유창 (조경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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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후왕의 아들로서 원삭 3년([[기원전 126년]]) 4월 갑진일에 무시후(武始侯)로 봉해졌다.<ref name="h15u">반고: 《[[한서]]》 권15상 왕자후표제3상{{위키문헌|:zh:漢書/卷015|한서 권15 왕자후표제3}}</ref> 아버지 조경숙왕은 간음으로 무제에게 폐해진 태자 단을 다시 세우려고 했으나, 무제의 허락을 받지 못한 채 경숙왕 63년([[기원전 93년]])에 죽었다. 당시 경숙왕이 생전에 총애하던 첩 요희의 아들 요자가 있었고,<ref name="h14">위와 같음, 권14 제후왕표제2{{위키문헌|:zh:漢書/卷014|한서 권14 제후왕표제2}}</ref><ref name="h53">위와 같음, 권53 경십삼왕전제23{{위키문헌|:zh:漢書/卷053|한서 권53 경십삼왕전제23}}</ref> 또 죽거나 봉국을 잃지 않은 경숙왕의 아들들 중에 무시후 유창의 서열이 으뜸이었다.<ref name="h15u"/> 요희의 오라버니는 무제의 환관으로 있었는데, 무제가 불러서 요자의 사람됨을 물었다. 요희의 오라버니는 요자는 욕심이 많다고 했고, 무제는 그러면 왕이 될 수 없다고 했다. 그러고서는 무시후의 사람됨을 물으니, 흠도 빼어난 것도 없다 했다. 그러자 무제는 그러면 족하다 하고, 무시후를 조경숙왕의 후사로 세웠다.<ref name="h53"/>
 
유창은 재위 19년 만인 [[기원전 74년]]에 죽어, 아들 회왕 유존이 뒤를 이었다.<ref name="h53"/><ref name="h14"/> 그에 치세에 따로 봉해진 왕자후가 없어, 아버지 경숙왕 대에 24후국을 분할한 조나라는 경왕 생전에는 더 분할되지 않았다.
 
== 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