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토 베르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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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 종전 후, [[아틀레틱 빌바오]]는 1936년에 우승을 거둔 주축 선수들이 은퇴하거나 추방되었기 때문에 선수단을 무에서 재건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빌바오는 같은 [[비스카이아도|비스카이아]]를 연고지로 둔 2부 리그 구단들로부터 선수를 물색했다. 베르톨은 빌바오의 선수 물색 과정에서 발굴한 선수들 중 하나로, ''차세대'' 아틀레틱의 주축 선수가 되었다. 그는 22세가 된 이튿날인 1939년 12월 3일에 [[라리가|스페인 1부 리그]] 신고식을 치렀다.
 
그는 프로 무대에서 10년 동안 아틀레틱 빌바오 선수로 활약했는데, 활약 기간은 1939-40 시즌부터 1949-50 시즌까지였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아틀레틱 역사상 가장 막강하기로 손꼽히는 선수단의 일원으로, [[라파엘 이리온도]], [[텔모 사라]], [[베낭시오 페레스|베낭시오]], [[호세 루이스 파니소]], 그리고 [[아구스틴 가인사]] 등과 함께했던 '역사적인 2차 전성기'의 일원이었다. 베르톨은 막강한 공격진과 수문장 [[라이문도 페레스 레사마|레사마]] 등의 당대 거성들이 즐비한 선수단에서 얼굴을 덜 비춘 선수였지만, 이 선수단의 주축으로, 특히 1942-43 시즌부터 1948-49 시즌까지 맹활약을 펼첬다펼쳤다. 그의 빌바오에서의 역할은 중원에 안정감을 더해주는 것이었다. 그는 현역 말년에 통솔력과 노련함을 인정받아 구단의 주장을 맡기도 했다.
 
베르톨이 현역 시절에 거둔 업적으로는 1942-43 시즌의 리그 우승 1940-41시즌과 1946-47 시즌의 리그 준우승, 1944년과 1945년의 [[코파 델 레이|컵 대회 우승]], 1942년과 1949년의 컵 대회 준우승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