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황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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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절대적 권위에는 다양한 통치 의무와 도덕적 의무가 수반되었다. 이를 지키지 못하면 왕조의 천위(天使)를 제거하고 전복하는 것이 정당화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실제로, 황제는 때때로 엄격한 계승 규칙을 피했고 왕조의 표면적인 "실패"는 성공적인 교체에 의해 작성된 중국 24정사 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학자 관료와 [[환관]]으로 구성된 제국 관료에 의해 황제의 권력이 제한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며, [[명나라의 황제|명나라 황제]]처럼 조상의 정책과 왕조 전통에 대한 효도의 의무로 인해 제약을 받는 경우도 존재하였다.
== 역사 ==
[[중국]]의 황제는 [[진 시황제]]에게서 시작되었다. 기존 중국에서 군주의 호칭은 [[왕]]이었다. [[주나라]]의 [[천자]]만이 왕의 직위를 가졌고, 주변 제후들은 [[오등작]]에 따라 차등되는 호칭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춘추 전국 시대]]를 거치면서 주나라 천자의 권위는 바닥에 떨어졌고 점차 왕을 칭하는 나라가 늘어나 모든 국가들이 왕을 칭하기에 이르렀다. 다시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진]]의 시황제는 왕과 차별화되는 칭호를 원했고, [[삼황오제]]에서 각기 황과 제를 따와 황제라는 칭호를 만들었다.<ref>《[[사기 (역사서)|사기]]》6권 진시황본기 시황 26년</ref> 황제의 [[아들]]은 왕이나 [[친왕]]으로 봉해졌다. 제(帝)는 본래 [[제정일치]](祭政一致) 사회였던 [[상나라]]에서 조상신을 일컫는 호칭이었으나<ref>貝塚茂樹·伊藤道治, 《中国の歴史》1권 〈原始から春秋戦国〉. 講談社, 1974</ref> 시황제가 황제라는 칭호를 만든 이후 황제의 약어로 사용되었다.
 
기원전 221년에 [[진 시황제]]가 황제의 칭호와 각종 용어를 정립한 이래 [[중국]]의 역대 [[왕조]]들은 자국의 [[국가원수]]를 황제라 하였다. 이는 [[한족]]이 건국한 왕조뿐만 아니라 [[몽골]]과 [[만주]]에서 생활하던 여러 기마민족(騎馬民族)이 세운 [[요나라]]·[[금나라]]·[[원나라]]·[[청나라]] 등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기존에 [[칸 (칭호)|칸]](Khan) 등의 고유한 칭호를 사용하였지만, 중국을 넘볼 정도로 강력해지면 여지없이 칭제건원하여 중국식 황제의 칭호를 채용하였다. 그러다가 [[1912년]] 청나라가 멸망하면서 폐지되었다. [[1934년]] [[만주국]]에서 허수아비지만 잠시 부활하기도 하였으나 [[1945년]] 만주국도 멸망하면서 완전히 없어졌다.
 
이와는 별도로 [[당나라]]의 [[당 고종|고종]]은 황제 칭호 대신에 ‘[[천황]]<!--천황(天皇)이라는 용어 자체를 대상으로 한 안내가 필요하므로 '당 고종'이나 '천자'로 링크하지 않고 동음이의 문서인 '천황'으로 링크'-->(天皇)’이라는 칭호를 쓰기도 하였다.<ref>上元元年 ~(중략)~ 八月壬辰,皇帝稱天皇,皇后稱天后。(상원 원년 팔월 임진일(역주:율리우스력 674년 9월 20일), 황제가 천황이라 칭하고 황후를 천후라 칭했다.) 《[[신당서]]》(新唐書) 〈[[:zh:s:新唐書/卷003|본기 제3 고종]]〉</ref>
 
== 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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