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국공 합작: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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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8월, 중국공산당의 원조 아래 국민당은 [[장제스]], [[이장달]], [[장태뢰]] 등으로 구성된 대표단을 [[소비에트 연방]]에 파견하여 [[소비에트공산당]]과 소련 [[붉은 군대]]의 조직을 관찰하게 하였다. 대표단은 육군·해군학교를 참관하고 소련공산당 지도자와 코민테른 책임자를 만난 후 12월 중순에 귀국하였다.
 
같은 해 9월, 소련 정부는 [[미하일 보로딘]]을 광주 주재 상설대표로 위임하여 파견하였다. 곧이어 보로딘은 [[상하이]]에서 진독수와 중국공산당 지도자를 회견하였다. 또한 광주에서 중국공산당·사회주의청년단·광주중앙집행위원과 회의를 열어 국민당의 개조방법을 토론하고, [[쑨원|손중산]]에게 국민당 개조회의를 소집할 것을 건의하였다. [[10년10월 25일]], [[쑨원|손중산]]은 광주에서 중국국민당 개조 특별회의를 열고 국민당 개조의 필요성과 개조 계획을 토론하여, 국민당 개조선언과 국민당 강령과 규약을 기초하였다. 회의에서 손중산은 [[요중개]], [[담평산]] 등 9명을 임시중앙집행위원으로, [[왕징웨이]], [[리다자오]] 등 5명을 임시중앙집행위원 후보로 파견하여 국민당 임시중앙집행위원회를 조직하고, 보로딘을 고문으로 초빙하여 국민당 개조작업에 착수하였다. 또 1924년 1월에 국민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1대)를 개최할 것을 결정하였다. 11월, 국민당은 ≪중국국민당 개조선언≫을 발표하여 국민당 개조의 필요성과 개조의 기본적인 요구사항을 설명하였는데, 여기에서도 손중산의 국민당 개조의 결심과 용기를 논하였다.
 
국민당 1대 폐막 후 손중산의 주관 아래 1월 31일, 국민당 중앙집행위원·감찰위원 제1차 전체회의가 열려, 요중개, [[대계도]], 담평산 3명을 상무위원으로 추천하고 각 부의 부장인선을 확정하였으며, 중앙위원을 상하이, [[베이징]] 등의 특별구에 각각 보내 집행부를 조직할 것을 결정하였다. 회의 후 각 성시의 국민당당부에서도 개조가 진행되었다. 대다수의 공산당원과 사회주의청년단원은 국민당에 가입하여, 국민당의 조직발전과 노동자·농민·혁명지식인의 국민당 입당을 원조하였다. 개조를 거친 후의 국민당은 [[부르주아]] 성격의 [[정당]]에서 노동자·농민·쁘띠부르주아와 민족부르주아의 [[민주혁명연맹]]으로 전환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혁명 통일 전선]]이 정식으로 구축된 것을 알리는 것이었으며, 이를 통해 제1차 국공 합작이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