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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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기는 [[1399년]]([[조선 정종|정종]] 초년) [[충청북도]] 옥천에서 출생, [[1426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부친상을 당해 3년상을 치르는 동안 관직에 임명되지 않았다. 이후 예문관 검열{{·}}사간원 좌헌납을 거쳐 함길도 도진무(都鎭撫)에 임명되었다가 내직으로 들어와 겸지형조사(兼知刑曹事){{·}}병조 참의{{·}}형조 참판 등을 지냈다. 처음 이름은 김효기(金孝起)였으나, 장인의 이름이 효정(孝貞)이어서 문기로 고쳤다. 영의정에 추증된 김관(金觀)이 아버지이고, 그의 아들 김현석(金玄錫)은 영월군수로 재직 중 아버지와 함께 순절하였다.
 
[[1455년]] [[조선 세조|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공조판서겸삼군도진무로 있으면서 은밀히 단종 복위운동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도중에 [[김질]],정창손의 밀고로 계획이 발각되자 [[김문기]]를김문기를 비롯하여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이개{{·}}]][[유성원]] 등은 체포되었으며, [[유응부]]는 자결하였다.
 
== 상훈과 제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