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릉 (조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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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명세자]]는 [[1809년]] [[9월 18일]] 순조와 [[순원왕후]]의 장자로 태어났다. [[1812년]] 왕세자에 책봉되었으며, [[1819년]] 음력 10월에 세자빈([[신정왕후]])과 가례를 올렸다. [[1827년]]에는 아버지 순조의 명에 따라 대리청정을 하며,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를 견제하고 처가인 [[풍양 조씨]]의 인물을 중용하였으나 4년 만인 [[1830년]]에 서거하였다. 순조의 뒤를 이어 [[조선 헌종|헌종]]이 왕으로 즉위한 뒤 《익종》(翼宗)으로 추존하였으며, [[1899년]] [[조선 고종|고종]]에 의해 문조익황제(文祖翼皇帝)로 재추존 되었다. <ref>[[조선 문조]]</ref>
 
신정왕후 조씨는 [[1808년]] 풍은부원군(豊恩府院君) 조만영의 딸로 태어나, [[1819년]] [[효명세자]]와 가례를 올리고 세자빈이 되었다. 그러나 [[1830년]]에 남편인 효명세자가 승하하였고, [[1834년]]에 순조가 승하하고 아들 헌종(憲宗)이 왕위에 오르자 왕대비(王大妃)가 되었다. [[1890년]] 음력 [[4월 17일]], 83세의 나이로 경복궁 흥복전에서 승하하여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내에 남편 익종과 같이 묻히게합장되게 된다. 그래서 수릉은 단릉이 아니라 합장릉이다. <ref>[[신정왕후 (조선)]]</ref>
 
순조 30년 [[1830년]] [[효명세자]]가 승하하자 [[성북구]] 석관동 [[의릉]] 왼쪽 언덕에 세자의 무덤형식인 원(園)으로 능을 조영하고, 《연경묘》라고 하였다. 그 후 아들 헌종이 [[1835년]] 즉위하여 익종으로 추존하고 능의 이름을 수릉이라고 하였다. 헌종 13년 [[1846년]] 풍수상 불길하다는 의논이 제기되어 천장하기로 하고, 현궁을 발굴하여 정자각에 봉안하고, 그 해 [[5월 19일]]에 발인하여, 20일에 양주 용마산 아래로 천장하였다. 1855년(철종 6) 8월에 다시 능을 발굴하여 건원릉 좌측 언덕으로 천장하였다. 고종 27년 [[1890년]]에는 83세로 승하한 신정왕후를 수릉에 합장하여 모셨다.<ref>{{웹 인용
|url = http://donggu.cha.go.kr/depart/donggu/tombInfoView.action#
|제목 = 추존왕 문조(文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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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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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