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노헤성: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TedBot (토론 | 기여)
잔글 봇: 그림 추가
TedBot (토론 | 기여)
잔글 봇: 문자열 변경 (할때 → 할 때 )
12번째 줄:
[[덴쇼]] 년간([[1573년]] ~ [[1591년]]) 동안, 주가 난부 가문의 후계문제로 성주 [[구노헤 마사자네]]는 [[산노헤 성]]의 종가 [[난부 노부나오]]와 대립하였고, 마침내 1591년 구노헤 마사자네는 난부 노부나오에 반기를 들어 거병한다. 이를 '''구노헤의 난'''이라고 한다. 난부 노부나오는 주변 가신들이 구노헤 가문에 동조하거나 눈치를 보자, 자력으로 진압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당시 권력자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구원을 요청한다. 이에 히데요시는 [[도요토미 히데쓰구]], [[아사노 나가마사]], [[가모 우지사토]] 등의 토벌군을 파견한다. 이 밖에도 [[간토]], [[오슈]]의 여러 가문도 참가하여 토벌군의 규모는 6만에 이른다. 하지만, 약 5천이 지키는 구노헤 성은 함락되지 않고, 토벌군은 고전한다. 이에 음력 9월 히데요시는 부녀자와 하급무사의 구명을 조건으로 개성으로 요구하였고, 마사자네는 이에 응해 성문을 열어 항복한다. 하지만, 조명 조건은 반고되어 성내의 모든 사람이 참살되고, 구노헤 가문은 멸문된다.
 
그 후, 구노헤 가문의 잔존 세력을 경계해 히데요시의 명으로 남아 있던 가모 우지사토가 성과 마을을 정비해 잠시동안 주둔하였다가, 난부 노부나오에게 성을 양도한다. 이에 노부나오는 구노헤 성을 후쿠오카 성로 개칭해 본거지로 삼았다. 하지만, 반란을 진압할때진압할 때 원군으로 온 가모 우지사토와 아사노 나가마사부터 구노헤는 본거지로 삼기에 너무 북으로 치우쳤다는 조언을 듣고, [[1592년]] 난부 노부나오는 고즈카타 지역을 정비하기 시작한다. 그 후, 노부나오의 아들 [[난부 도시나오]]는 [[모리오카 성]]이 완공되자, 거처를 모리오카 성으로 삼는다. [[1636년]] 후쿠오카 성은 폐성되었다.<ref name="a"/>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