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살리흐 이스마일 (장기 왕조):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TedBot (토론 | 기여)
잔글 봇: 문자열 변경 (을때 → 을 때 )
TedBot (토론 | 기여)
잔글 봇: 문자열 변경 (할때 → 할 때 )
31번째 줄:
 
== 생애 ==
1174년 누르 앗딘 마흐무드가 죽었을 때 아스살리스는 11세였다. 이때 누르 앗딘 마흐무드의 장교들이 누르 앗딘의 영토를 장악할때장악할 때 아즈살리흐는 [[환관]] 구무슈테긴의 보호 아래 아버지의 영지들을 장악했다.
 
그때 [[이집트]]에서 있던 살라흐 앗딘이 아스살리흐를 꼭두각시로 세워 [[시리아]]를 장악하고자 했다. [[1174년]] 10월, 살라흐 앗딘이 700 명의 기병을 이끌고<ref>아민 말루프,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259쪽.</ref> 시리아로 진군하자 아스살리흐와 그의 측근들은 [[다마스쿠스]]를 버리고 [[알레포]]로 도망쳤다. 살라흐 앗딘은 다마스쿠스를 점령한 뒤에도 말머리를 멈추지 않고 [[홈스]]와 [[하마]]를 연달아 정복했다. 그 해 12월, 살라흐 앗딘은 알레포에 나타나 아스살리흐를 보호하겠다는 명목으로 성을 포위했으나 아즈살리흐는 알레포의 시민들에게 자신을 보호할 것을 간청했고,<ref>아민 말루프,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258 ~ 259쪽.</ref><ref>스탠리 레인 풀, 『살라딘』, 169쪽.</ref> 이에 고무된 알레포의 저항에 살라흐 앗딘은 결국 포위를 풀고 퇴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