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귀비 진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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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륭 59년 (1794년), 40여년간 빈의 지위에 있던 진씨가 완빈으로 진봉하였다.
 
가경 6년 (1801년) 정월, 완빈에서 완귀태비로 봉하였다. 가경제는 진씨를 완태비 모비(母妃)라 하였다. "예전에 완귀태비가 건륭제의 잠저에 있을때부터있을 때부터 건륭제를 모셨기 때문에 진씨를 받을어 귀비로 봉하고, 지금은 수강궁이 그 다음 자리에 있으며, 나이 86이며, 강건이화(康健颐和), 의숭(宜崇)의 위호를 받는 신경례를 하면서 완귀태비로 추앙아야한다. 모든 일을 적절하게 처리해야 하며, 각 관아에서 관례대로 예비하여 4월 15일에 거행해야한다"고 말했다. 가경 6년 2월, 정월의 문서에서 공부 사원이 대두 제도에 따르지 않고 '귀태비'로 두 계급 올렸다. 이로 인해 상서 임녕과 좌시랑 영화, 낭중 영조 등은 모두 급여를 삭감받는 처분을 받았다.
 
가경 12년 (1807년) 2월 2일, 92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건륭제의 후궁들 중에서는 가장 오래 살았다. 가경 12년 11월 3일, 금관은 청동릉의 유릉비원침에 묻혔다. 《餵馬檔》의 기록에 따르면 [[악귀인 서림각라씨]]가 완귀비 진씨 사후, 청동릉으로 옮겨질 진씨를 정안장에 직접 찾아가 배웅했다는 기록이 있다. 둘의 관계는 알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