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크 3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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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rik lam.jpg|섬네일|250px|에리크 3세]]
'''에리크 3세'''({{llang|da|Erik III}}, [[1120년]]경 [[퓐 섬]] ~ [[1146년]] [[8월 27일]] [[오덴세]])는 [[덴마크]]의 국왕(재위: 1137년 ~ 1146년)이다. 경건함, 너그러움, 약하고 부드러운 성격으로 인해 [[하느님의 어린 양]]과 같은 국왕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에리크 양왕'''({{llang|da|Erik III Lam|에리크 람}})이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퓐섬]] 출생으로, [[오덴세]]에서 숨졌다.
 
== 생애 ==
[[에스트리센가]](Estridsen) 출신이다. 덴마크의 귀족인 하콘 수니바손(Hakon Sunnivasson)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에리크 2세]] 국왕의 조카이기도 하다. 그의 어머니인 랑힐(Ragnhild)은 [[에리크 1세]] 국왕의 딸이다.
 
[[1134년]] 포테비크(Fotevik) 전투에서 자신의 조카인 [[에리크 2세]]를 지원하면서 참전했다. [[1137년]] 에리크 2세 국왕이 살해당하면서 덴마크의 국왕으로 즉위했다. [[1139년]]에는1139년에는 에리크 3세의 사촌인 올라프 하랄센(Olaf Haraldsen)이 [[스코네]]에서 권력을 잡으면서 에리크 3세 국왕과 대립했다. [[1141년]] 에리크 3세는 [[헬싱보리]] 인근에서 올라프 하랄센을 패사시켰다.
 
[[1144년]]에는1144년에는 노르트마르크(Nordmark)의 루돌프 1세(Rudolf I) 변경백의 딸인 [[잘츠베델]](Salzwedel)의 루트가르트(Lutgard)와 결혼했지만 자녀를 낳지 못했고 사생아인 아들 망누스 에릭센(Magnus Eriksen)을 낳았다.
 
[[1146년]] 덴마크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퇴위당한 군주로 기록되었다. 퇴위당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치세 능력 또는 건강상의 이유로 추정된다. 퇴위한 이후에는 성 크누드(Knud) 수도원에 들어갔고 1146년 8월 27일에 사망하면서 그 곳에 매장되었다. 그가 사망한 이후에 덴마크에서는 [[스벤 3세]], [[크누드 5세]], [[발데마르 1세]] 사이에 내전이 일어나게 된다.
 
== 외부 링크 ==
* {{위키공용분류-줄}}
 
{{전임후임
|직책=[[덴마크의 군주|덴마크의 국왕]]
|임기=[[1137년]] ~ [[1146년]]
|전임자=[[에리크 2세]]
|후임자=[[스벤 3세]], [[크누드 5세]], [[발데마르 1세]]
}}
 
{{덴마크의 군주}}
 
{{위키공용분류}}
{{전거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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