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잘루트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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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문에 카이로로 돌아도는 도중에 바이바르스에 의한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쿠투즈는 살해되고 바이바르스가 새로운 맘루크 왕조의 술탄이 되었다.
 
바이바르스는 몽골의 침공을 막아낸 영웅으로서 카이로에 개선하여 이집트, 시리아의 왕으로써 확고한 지위를 쌓았다. 그 후에도 매년 벌어진 몽골과의 전쟁에서 연전연승을 거둔 바이바르스는 중앙아시아에서 내려온 약소자들이었던약소민족이었던 맘루크들을맘루크를 안정한안주시키고 정권의 주인으로주도권을 상승시키는 데잡는데 성공해, 사실상 맘루크 왕조의 시조가 되었다.
 
한편 아인잘루트 전투 이전에 귀환했던 몽골제국의 훌라구는[[훌라구]]는 아제르바이잔의 [[타브리즈]]에 이르러, 둘째형 [[쿠빌라이]]와 동생 [[아리쿠브케]]가 칸의 지위를 놓고 내분이 시작되는 것을 알고는 이 땅에 머물기로 하고, 이란-이라크를 세력권으로 삼아 자립하였다. 이때부터 훌라구의 자손에 의한 세습이 이루어지게 된 이란에 위치한이란의 몽골왕국을 [[일 칸국]]이라 부르게 되었다.
 
아인잘루트 전투의 결과 팔레스타인은 맘루크 술탄국의 영토가 되었고, 그 후에도 일 칸국과 맘루크 술탄국 사이에 레바논, 시리아를 둘러싼 대립이 계속되어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양국의 각축전은 [[킵차크 칸국]](주치 울루스) 및 [[동로마 제국]], 서유럽 여러나라를 포함시키게 되어, 13세기 후반을 통틀어 가장 치열한 외교전으로까지 번질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