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구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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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구파'''(勳舊派)는 [[혁명파 사대부]]를 계승한 세력으로서 [[조선 세조 (조선)|세조]]의 왕위 찬탈에 협조하여 정치적 실권을 장악한 귀족적 관료학자들을 말한다.
 
훈구파라는 명칭은 본래 훈구공신(勳舊功臣), 훈구대신(勳舊大臣) 등 오랫동안 공로를 많이 세웠다는 의미를 지닌 일반 용어였으나, [[조선 성종|성종]] 후반 이후 대두한 신진 정치 세력인 [[사림파]](士林派)와 구별하기 위한 역사적 용어로 쓰이고 있다. 훈구파는 사장학(詞章學)을 주도하며 사림파의 비판을 받았다.<ref>{{웹 인용|url=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5922|제목=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장(詞章)|확인날짜=2021-07-04|출판사=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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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구파와 사림파의 갈등 ==
왕권과 [[신권]] 대립에서 잉태했던 조선사회 갈등은 훈구파와 [[사림파]]의 갈등으로 이어졌는데, 당시 [[조선 세조 (조선)|세조]]가 왕권을 탈취한 일에서 기인한다. 발단은 [[이극돈]]과 [[김일손]] 두 사람 사이 갈등이었지만, 그 배후는 복잡했다. [[이극돈]]은 [[수양대군]] 즉위를 계기로 등장한 훈구파의 일원이었고, [[김일손]]은 훈구파의 [[정치]] 행위에 극도의 불신감을 가진 [[사림파]]였다.
 
구세력인 집권 훈구와 신세력인 사림의 대립이었는데, 양자 가장 큰 차이는 세조의 즉위에 관한 견해 차이다. [[이극돈]]이 [[유자광]]을 끌어들이고, [[유자광]]이 다시 노사신·윤필상·한치형·신수근 등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게 이 훈구세력들의 세계관과 같았기 때문이다.
 
[[사림파]]는 세조 체제를 대역죄로 몰아 [[조선 세조 (조선)|세조]] 즉위 자체를 부인하는 세계관이었다. 결국 [[김종직]]의 '조의제문'으로 이어져 [[연산군]]과 훈구파는 이미 죽은 [[김종직]]의 목을 자르며 부관참시했다. 이미 죽은 사람의 목을 베는 판국에 산 인물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김일손]]·[[권오복]]·[[권경유]] 세 사신(史臣)은 대역죄로 몰려 온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능지처사(陵遲處死)를 당했다. 사화(士禍)는 [[선비]]가 화를 입었다는 뜻이지만, [[무오사화]]는 [[사관]](史官)들이 화를 입었기 때문에 [[사화]](史禍)로도 불린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423021001|제목=조광조와 중종, 아무도 믿지 못한 왕… 왕도정치 꿈꾸던 젊은 개혁가 내치다|이름=백승종(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날짜=2012-04-23|출판사=서울신문|언어=한국어|확인날짜=2012-11-30}}</ref>
 
== 같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