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존 우스만호자예프: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 봇: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틀 부착 (근거 1, 근거 2)
링크 제안 기능: 3개 링크가 추가됨.
6번째 줄:
우스만호자예프는 1950년대부터 사무총장이었던 [[샤로프 라시도프]]의 뒤를 이었다. [[모스크바]]로부터의 목화 재배 주문이 점점 더 많아짐에 따라,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관개되고 수확된 토지의 기적적인 성장과 생산과 효율의 기록적인 향상을 보고함으로써 대응했다. 오늘날 이 기록들의 대부분은 위조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의 위조에는 모스크바와 우즈베키스탄의 중앙소비에트 정부의 많은 관리들이 연루되었다.
 
1986년, 공화국의 거의 모든 당과 정부 지도부가 목화 생산 수치를 조작하는 음모를 꾸몄다고 발표되었다. 우즈베키스탄 지도부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숙청에서 살아남은 장관 한 명)이 수행되었고, 모스크바에서 검사들이 투입되어 광범위한 체포, [[사형]], 자살로 이어졌다.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의 사위인 [[유리 추르바노프]]가 이 사건에 연루되면서 부패가 얼마나 크게 확대되었는지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1989년, 우스만호자예프는 "목화 사건"으로 기소되어 1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짧은 시간 후, 1990년에 그는 감옥에서 풀려났지만 완전히 무죄판결을 받지는 못했다. 우즈베키스탄 대법원은 2016년 11월 18일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우스만호자예프를 완전히 복직시켰다.<ref name="ozodlik">{{웹 인용|title=Скончался бывший руководитель Узбекистана |url=https://rus.ozodlik.org/a/28375349.html |language=russian}}</ref>
13번째 줄:
위성사진에서 [[우즈베키스탄]] 정부의 보도가 거짓임을 보여준 것은 우스만호자예프가 사무총장으로 있을 때였다. 우스만호자예프는 중앙위원회가 우즈베키스탄에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을 때 [[모스크바]]의 꼭두각시 역할을 하면서 스캔들 내내 그의 자리를 지켰다. 1983년 11월 3일부터 1988년 1월 12일까지 우스만호자예프는 사무총장을 지냈고, 그의 후임은 [[라피크 니쇼노프]]였다.
 
1988년 1월 12일 우즈베키스탄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서기직에서 해임되었고, 1988년 5월 24일 [[소련 최고평의회|소련 최고 소비에트]] 주석직에서 해임되었다. 1988년 11월 28일, 그는 "자신을 위태롭게 했다"는 이유로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해임되었다.<ref>{{웹 인용|title=Узбекистан: В Фергане скончался бывший глава республики Инамжон Усманходжаев |url=https://www.fergananews.com/news.php?id=26152 |language=russian}}</ref>
 
== 사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