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슐리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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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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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리만은 원래 사업가 출신이었다. 자신이 쓴 책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로부터 받은 《텔레마코스의 모험》이라는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게 되고 이후 [[트로이아|트로이]]라는 고대 역사에 관해서 관심을 키우게 된다. 이후 그리스 문명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갖고 장래 고고학자가 되고 싶어했지만, 집안의 어려운 형편때문에 학업을 계속 할 수 없었다. 이후 견습사원, [[선원]], [[노동자]] 등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다가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본점을 둔 인도물감 장사에 뛰어든다. 사업하는 동안 물건을 실은 선박이 폭풍에 휘말려 파산위기 까지 몰리기도 했으나 기적적인 행운으로 살아나 이후, 승승장구하여 30세를 넘어서는 대사업가가 되었으며 이후 자신의 어릴 적 꿈이었던 고고학자가 되기 위해 조금씩 사업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그는 세계여행을 시작하여, [[튀니스]], [[스리랑카]], [[캘커타]], [[마드라스]], [[델리]], [[히말라야 산맥]], [[도쿄]], [[멕시코시티]], [[서울]] 등지를 도는 2년간의 여행을 한다.
 
1866년부터는 고대사 연구에 착수하여 1870~1873년에 걸친 발굴로 트로이 유적을 찾아냈다. 세 차례에 걸친 탐사를 통해 여러 층에 걸친 트로이 유적이 발굴되었으며 슐리만은 제2층에 해당하는 유적을 트로이 전쟁의 유적으로 판단하였다.<ref>몇 년 뒤 데르베르트의 발굴을 통해 실제 트로이 전쟁 때의 유적은 2층이 아닌 제6층임이 밝혀졌다.[http://100.naver.com/100.nhn?docid=98630 두산백과사전 슐리만 항목]</ref> 1876년에는 미케네 유적을 발굴하여 고대 그리스 이전의 에게 문명의 계통을 밝혀내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슐리만은 직접 곡괭이와 삽을 들고 황금의 보물 뿐 아니라 가락바퀴나 돌망치처럼 조악하고 흔한 것들까지도 모두 발굴해 내었고 소중하게 수집하여 소장했을 뿐 아니라 유수의 박물관들에 아낌없이 헌사하기도 했다. 슐리만은 어학에 대해 뛰어난 재능을 가졌을 뿐만아니라 이 재능을 더 연마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다. 힘든 환경속에서도 학업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모국어인 [[독일어]]를 포함 [[영어]], [[프랑스어]], [[아랍어]], [[러시아어]], [[그리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등등의 말을 독학으로 익혔으며 유창한 수준으로 구사하였다. 특히 트로이 발굴을 위해서는 고대 그리스어를 독학으로 익히기도 한다. 전문학자가 아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조력자를 찾아서는 데도 망설이지 않았으며 끈기를 가지고 트로이 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를 멈추지 않는 추진력을 가졌다.
 
이후 몸이 쇠약해져 귀 수술을 받은 후, 충분히 쉬지 않고 배 여행을 계속하다 악화되어 1890년 12월 26일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