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포 (조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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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말 한중(漢中)을 지배하고 있던 [[장로 (사람)|장로]](張魯)의 공조(功曹)였다. 한중의 주민이 옥인(玉印)을 바치자 장로는 한녕왕(漢寧王)을 칭하려 하였으나, 염포는 이를 말렸다.
 
건안(建安) 20년([[215년]]), [[조조]](曹操)가 대군을 이끌고 한중을 침략하여 양평관(陽平關)을 함락시켰다. 장로는장로가 항복하려 하자, 염포는 맞서 싸울 것을 주장하였다. 단, 이는 승산이 있어서가 아니라 바로 항복하면 조조가 얕잡아 볼 것이라고 판단하여 내린 술책이다. 장로는 이를 받아들였다.
 
장로의 동생 [[장위]](張衛)가 전의를 잃어 항복하고, 남정(南鄭)으로 입성한 조조가 사자를 장로에게 보내자 장로와 염포는 항복하였다. 염포는 조조로부터 공적을 높이 사, 장로와 함께 열후(列侯)에 봉해졌으며, 동시에 [[마초]](馬超)의 아내 동씨(董氏)를 배필로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