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기: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 →‎상훈과 제향: 봇 ; 링크 치환
잔글 →‎상훈과 제향: 봇 ; 링크치환 작업
12번째 줄:
 
== 상훈과 제향 ==
[[1731년]]([[영조 (조선)|영조]] 7) 김문기의 후손 김정구의 청으로 복관되었고, [[1778년]]([[정조 (조선)|정조]] 2)에는 충의(忠毅)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1791년]]([[정조 (조선)|정조]] 15) 어정배식록(御定配食錄)을 정할 때 삼중신(三重臣)에 포함되었다. 김천의 [[섬계서원]]과 사육신공원의 [[의절사]] 등에 제향되었다.
 
또한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정동 오정각길 35에 건립된 오정각(五旌閣,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7호)에는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기리기 위해 표창하여 동네에 정문을 세웠는데 김문기와 아들 김현석의 충신 정려각, 김충주(김문기의 손자){{·}}김경남(김문기의 증손){{·}}김약전(김문기의 현손)의 효자 정려각 등 5대에 걸친 충효 정려각이 있다.<ref name="김문기"/><ref>『백촌 김문기 연구』(이촌 김진우 헌법재판관 화갑기념 논총간행위원회 편집, 1994년 동방도서 출판) 참조</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