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에너지 위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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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유류 파동 당시에는 1개월 만에 국제유가가 약 3.9배로 올랐고 [[대한민국]]의 환율도 21.9% 올랐다. 경제성장률은 3%선으로 급락했다. [[1973년]] 당시 [[대한민국]] [[서울]]의 자가용 승용차는 5만4331대였으나 1차 유류 파동으로 인해 9,518대가 줄어 [[1974년]]에는 4만 4,813대가 되었다. 1971년에는 3만9054대, 1972년에는 4만753대, 1973년에는 5만4331대, 1974년에는 4만4813대, 1975년에는 4만7881대, 1976년에는 5만4954대, 1977년에는 7만4320대, 1978년에는 10만6960대로 1차 석유 파동 시기를 제외하고 [[서울]]의 자가용 승용차 댓수는 해마다 증가하였다.
 
1차 유류 파동으로 6%대였던 미국의 국채수익률은 8%대로 상승했다.<ref name="autogenerated1">"과거 오일쇼크때 금리 얼마나 올랐나" [[머니투데이]] 2004-05-24 00면 558자</ref> 이로 인해 당시 자동차시장에서 대 변혁이 일어나게 되고, 시빅이 CVCC 엔진으로 새로운 배기가스 규제에 합격, 당시 약세였던 [[혼다]]의 이미지에 큰 변화가 생겼다.
 
== 1979년 석유 위기 (제2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