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산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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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쿠빌라이 칸]]의 원나라는 3차에 걸친 수십년의 남송 정벌을 진행하였고 남송의 거센 저항에 이기기 위해 가는 곳마다 학살하여 남송 많은 인구가 사라지게 하였고 수십개의 성을 공략할 때마다 포위하여 남송인들을 굶겨 죽였다. [[1276년]] [[남송]]의 수도 [[임안]]을 함락시켰고 [[남송 공종]]은 항복하였다. 이로써 남송은 사실상 멸망했다. 몽골군은 공종의 부인과 일족들을 기생으로 만들고 치욕을 주었다. 그러나 [[육수부]], [[문천상]], [[장세걸]]
서서히 강남에서 [[광둥성|광동]]으로 밀려난 옛 남송군은 병사한 단종의 후임으로 동생인 조병(趙昺
원나라측의 기록에 의하면 옛 남송함대는 1,000척의 대형 선박을 모두 한데 묶어서 화공 대책으로 선체 외장에 진흙을 칠하고 적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긴 목재를 묶어서 붙여놓아 방어망을 만들어 기름을 이용해 화공을 가하려는 원나라군을 물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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