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 신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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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라]] 2대왕 [[계 (하나라)|계]](啓)의 차남인 신진(莘鎭)의 후손이 艸를 제거하여 신(辛)을 성으로 하였다고 전한다.
 
== 역사시조 ==
영산 신씨(靈山 辛氏) 시조 신경(辛鏡)은 송나라 8학사<ref>[[현풍 곽씨]] 시조 곽경, [[충주 지씨]] 시조 지경</ref>의 일원으로 고려에 동래하고 1138년(인종 16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금자광록대부 문하시랑평장사(金紫光錄大夫 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렀다고 한다.<ref>{{뉴스 인용 |제목=[김성회의 뿌리를 찾아서] <63>영산, 영월신씨 |url=https://www.segye.com/newsView/20131210004777 |날짜=2013-12-10 |출판사=세계일보}}</ref><ref>모화사상으로 인해 중국 성씨를 빌려 썼을 뿐 토성이라는 견해도 있다.</ref>
 
포항에 있는 4세 신몽삼의 묘에 영주신지묘라고 되어 있는데, 《신씨성관고(辛氏姓貫考)》에서는 영주(寧州)는 중국에 없고, 우리나라 [[녕변군|녕변]](寧邊)의 옛 지명이라 하며 신씨가 귀화한 성씨가 아니라고 한다.
 
[[영월 신씨]](寧越 辛氏) 시조 신시랑(辛侍郞)은 [[영월 엄씨]] 시조인 엄림의(嚴林義)와 함께 당나라 파락사(波樂使)로 신라에 동래하였다고 한다.
 
== 역사 ==
9세손 신천(辛蕆)이 1294년(충렬왕 20년) 과거에 급제하여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에 이르렀고,<ref>{{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EXM_KM_5COc_1294_000753|신천}}</ref> 신천의 동생 신혁(辛革)은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가 되었다. 신혁의 손자 [[신예 (고려)|신예]](辛裔)가 충목왕 때 취성부원군(鷲城府院君)에 봉해졌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672317 『고려사』 권125, 열전38]</ref> 공민왕 때 신예의 동생 [[신부 (고려)|신부]](辛富)는 취산군(鷲山君)에 봉해지고, [[신돈]](辛旽)은 영도첨의사사(領都僉議使司)로 집권하여 개혁을 추진했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672545 『고려사』 권132, 열전45]</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