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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기시'''는 고려, 조선 시대에, 병기, 기치, 융장, 집물 따위의 제조를 맡아보던 관아이다. 몇 차례 군기감으로 이름을 바꾸다가 세조 12 (14661466년)년에 군기감을 고친 이름이다. 고종 21년(1884)에 폐하고 그 일은 기기국으로 옮겼다.
 
== 구성 ==
 
관원은 병조판서나 병조참판 중에서 1인, 무장(武將) 중에서 1인을 선발하여 도제조(都提調)와 제조를 두어 감독하게 하였다. 그 밑에 정(正)·부정(副正)·첨정(僉正)·별좌(別坐)·판관(判官)·별제(別提)·주부(主簿)·직장(直長)·봉사(奉事)·부봉사(副奉事)·참봉(參奉)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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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직 ===
≪경국대전≫에 나와 있는 기술직종을 보면 여기에 딸린 공장(工匠)으로는, 칠장(漆匠) 12인, 마조장(磨造匠) 12인, 궁현장(弓弦匠) 6인, 유칠장(油漆匠) 2인, 주장(鑄匠) 20인, 생피장(生皮匠) 4인, 갑장(甲匠) 35인, 궁인(弓人) 90인, 시인(矢人) 150인, 쟁장(錚匠) 11인, 목장(木匠) 4인, 야장(冶匠) 130인, 연장(鍊匠) 160인, 아교장(阿膠匠) 2인, 고장(鼓匠) 4인, 연사장(鍊絲匠) 2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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