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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 ==
===성서의 비신화화===
불트만은 현대의 남성과 여성에게 우주의 [[외계인]]을 그리게 하는, 하늘의 도시나 삼층적 우주 같은 신화적인 용어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트만은 그런 [[신화]]적 용어들 때문에 많은 현대인들이, [[성경성서]] 성경성서에 나오는 이야기에 나타나는 고유한 구원의 메시지를 함께 거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 이런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현대적이고 철학적이며 심리학적이고 과학적인 언어로 다시 쓰는 것이었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현대의 남성과 여성은, 신화적인 용어가 더 이상 전달하지 못하는 진리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불트만은 그의 신학적 저술에서 기독교 메시지의 신화적인 표현을, 새롭고 실존적인 해석으로 교체시키려고 시도하였다. 조직신학자 [[폴 틸리히]]도 성서의[[성서]]의 "비신화화(demythologization)"를 요청하는 불트만의 메시지에 영향을 받았다.
 
{{인용문3|right|[[양식비평]]의 목표는, 주 예수의 말씀이나 비유, 또는 이야기의 조각이 지니는, 원래의 양식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이차적인 추가와 양식들을 구분하는 것을 배우게 되고, 그러한 배움은 전통의 역사에서 중요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이다.|불트만|[[공관복음 전승사]]}}
불트만의 《[[공관복음공관복음서 전승사]]》(1921[[1921년]])는 여전히 [[복음서]] 연구에서, 틀에 박힌 수사적인[[수사학]]적인 어구나, 모여서 복음서를[[복음서]]를 형성한 이야기 단위들에 대한 그의 분석과 불트만이 가장 영향력있는 해설자이었던 이른바 "[[양식 비평]]"이라 불리는, 역사적으로 기원을 분석하는 방법을, 거부하는 학자들에게조차 필수적인 도구로 간주된다.
===양식비평===
 
[[1941년]], 그는 [[요한복음서]]에 양식비평을 적용하였다. 그 글에서 그는 요한이라는 복음서 저자가 의존하고 있던, 잃어버린 "복음 표적들"(Signs Gospel)<ref>{{인용문|요한복음서에는 7개의 표적(sign)이 나온다. 이것은 다른 복음서에 나오는 기적(miracle)과는 그 기록 목적이 다르다. 다른 복음서의 기적은 능력을 지닌 예수의 행동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요한복음서의 표적은 그 행위 자체보다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에 대해 불트만은 "표적은 단순한 능력의 과시가 아니라 언어화된 지령, 곧 상징이다."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물이 포도주가 되는 가나의 혼인잔치 표적은, 유대교의 시대는 가고 기독교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메시지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불트만은 요한복음서의 저자가 입으로 전해져온 예수 이야기(예수 전승)을 참고하여, 요한복음서에 몇 개의 표적을 실었다고 가정하였다.|{{서적 인용|저자=R. Bultmann|제목=The Gospel of John|쪽=p. 114}}|{{서적 인용|저자=김득중|제목=요한의 신학|출판사=컨콜디아사|발행년도=1994|쪽=p. 68}}에서 재인용}}</ref>의 존재를 구분하여 드러내었다. 이 학술논문은 당시 상당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고, [[역사적 예수]]연구에서 하나의 이정표이다. 같은 해에 이루어진 그의 신약성서와 신화 강의는, 신약성서의 메시지를 비신화화 하는 문제를 다루었다. 비신화화의 문제는, 해석자들에게 전통적인 신학을 [[마르틴 하이데거]]와 불트만의 동료가 지닌 철학으로 대체할 것을 요청했다. 그것은 현대의 독자들이 예수가 가르친 메시지의 실재에 접근 가능하게 하려는 노력이었다. 불트만은 예수의 삶이 이야기이며, 그 이야기의 구조에서 우리는 그것이 [[희생제사 신학]](offering theology)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믿었다. 그 이야기의 교훈들은 신화의 익숙한 언어로 우리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주어진 설명이다. 불트만은 신앙이 현재의 실재가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불트만에게, 세계의 사람들은 항상 실망스럽거나 소란스러웠다. 신앙은 의지의 결정된 중대한 행동이어야만 하고, 그것은 "고대의 증거들"을 추려 모으거나 격찬하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