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미 시키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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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치젠 국|에치젠]]노카미({{lang|ja|越前守}}) [[오에노 마사무네]]({{lang|ja|大江雅致}})와 [[엣추 국|엣추]]노카미(越中守) [[다이라노 야스히라]]({{lang|ja|平保衡}})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처음 태어났을 때의 이름은 오모토마루({{llang|ja|御許丸}})라 불리며, 태황태후궁(太皇太后宮) 마사코 내친왕({{lang|ja|昌子内親王}})을 따르는 여동(女童)이 되었다(그녀의 어머니는 내친왕을 섬기는 뇨보였다) 하나, 이에 대해서는 부정하는 설도 있다.
 
[[이즈미 국이즈미국|이즈미]]노카미(和泉守) [[다치바나노 미치사다]]({{lang|ja|橘道貞}})의 아내가 되어 남편과 함께 이즈미 국으로 들어갔다. 뒤에 「이즈미 시키부」라는 뇨보의 이름도 이때 남편의 부임지와 남편의 관직명을 합쳐서 부른 것이다. 미치사다와는 훗날 헤어졌는데, 그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 [[고시키부노 나이시]]({{lang|ja|小式部内侍}})는 어머니의 뒤를 잇는 노래 재능을 보였다. 교토로 돌아온 뒤에는 미치사다와 별거 상태에 있으면서 [[레이제이 천황]](冷泉天皇)의 제3황자 다메타카 친왕({{lang|ja|爲尊親王}})와의 열애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지만, 신분이 다른 사람과의 사랑은 결국 그녀를 부모와 의절하게까지 했다.
 
친왕이 죽은 뒤에는 그 친동생 [[아쓰미치 친왕]]({{lang|ja|敦道親王}})의 구애를 받았다. 친왕은 시키부를 자신의 저택으로 불러들였는데 이것은 그의 정비(正妃)였던 후지와라노 나리토키({{lang|ja|藤原濟時}})의 딸이 가출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아쓰미치 친왕과의 사이에서 아들 에이가쿠({{lang|ja|永覺}})를 얻었는데, 아쓰미치 친왕도 [[간코]](寛弘) 4년([[1007년]])에 일찍 세상을 떠나고, 간코 말년([[1008년]] - [[1011년]]경)에는 [[이치조 천황]](一條天皇)의 중궁(中宮) ・ [[후지와라노 쇼시]]({{lang|ja|藤原彰子}})의 뇨보로서 출사하였다. 죠와(長和) 2년([[1013년]])경에 쇼시의 아버지인 [[후지와라노 미치나가]]({{lang|ja|藤原道長}})의 게시(家司)로서 무용(武勇)으로 이름높던 후지와라노 야스아키({{lang|ja|藤原保昌}})와 재혼하여 그의 부임지인 [[단고 국|단고]](丹後)로 내려갔다. 만쥬(万寿) 2년([[1025년]])에 딸 고시키부노 나이시가 사망할 때까지도 살아있었던 것 같지만, 그녀의 만년의 모습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