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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목의 변'''(土木之變) 또는 '''토목보의 변'''(土木堡之變)은 [[명나라]] [[정통제]] 14년([[1449년]])에 발생한 명나라와 몽골 부족을 통일한 [[오이라트]]와의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영종은 친정을 하다가 오이라트의 포로로 잡혀 중국 역사상 야전에서 포로로 잡힌 유일한 황제로 기록되었다.
 
== 배경 ==
환관 [[왕진]]의 전횡과 더불어 명나라 초기의 안정적인 조정은 [[정통제]] 영종에 이르러 해이해지기 시작했고, 1449년에는 몽골계 부족인 [[오이라트]](Oirāt)가 세력을 형성하고 무역의 확장을 위해 명과 교섭하였으나 여러 차례 결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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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에서 비정예군이 오이라트족에게 대패하였음에도 여러 군신들의 말을 듣지 않은 채 왕진이 국정을 농단하였다. 이들의 패전소식은 북경(北京)조정에 큰 충격을 주었고, 남경(南京) 천도설이 나왔지만 병부시랑 우겸(于謙)이 "남쪽으로 도망하여 멸망한 송(宋,960 ~ 1279)의 예를 못보았느냐며 북경은 천리이므로 사수하여야 한다" 라고 강력히 주장하여 조정을 안정시켰다.
 
== 결과 ==
한편 에센족은 명군의 수급로를 차단하고 연승하였으나 환관 왕진은 이 와중에도 신하들의 충고를 무시하는 등 전횡을 일삼다가 피살당하였으며, 결국 에센군은 토목보(土木堡)를 포위하여 명나라 황제 영종을 잡아갔다. 중국 역사상 외적과의 전쟁 중 황제가 포로로 잡혀 간 것은 명나라 영종이 처음이다. 이 사건을 토목의 변이라고 한다.
 
황제를 포로로 잡아간 에센족은 전세의 유리함을 알고, 명과의 교섭을 시작하려 하였으나 북경 조정은 영종의 이복동생인 주기옥(朱祁鈺)을 새로운 황제로 옹립하니 대종 [[경태제]](代宗 景泰帝)이다. 에센족은 포로로 잡은 영종이 협상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자 아무런 조건 없이 1450년에 명나라 조정에 송환했다. 하지만 이미 이복동생인 대종이 즉위하여 황제가 되었으므로 영종은 태상황(太上皇)이 되었으나 궁에 유폐되었다.
 
== 참고 ==
* [[정통제|영종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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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Bataille de la forteresse de Tumu]]
[[ja:土木の変]]
[[mn:Тумугийн тулалдаан]]
[[zh:土木之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