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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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철'''(?~?)은 [[진나라]]가 망하고, [[항우]]의 [[초나라]]와 [[전한 고조|유방]]의 [[전한|한나라]]이 중국을 놓고 재패를 벌이던 시기의 한나라 대장군이었던 [[한신]]의 세객이다.
괴철(?~?)
 
{{토막글|인물}}
진나라가 망하고, 초나라(항우)와 한나라(유방)가 중국을 놓고 재패를 벌이던 시기의 한나라 대장군이었던 한신의 세객
[[분류:한나라]]
 
[하단은 초한지와 사기의 내용임]
 
난세에는 천하의 운명을 놓고 승부를 거는 영웅이 출현하고, 태평성대에는 혼군(昏君)이 나타나 나라와 백성을 쇠락과 고통의 길로 빠지게 하는 것이 고금의 역사였다. 전국시대의 혼란을 극복하고 천하를 통일하는 영웅은 진시황이었다. 그는 봉건제의 잔재를 깨끗이 일소하고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통해 어느 누구도 감히 도전할 수 없는 일인 독재체제를 펼쳤다.
 
일원화된 지도력은 국가의 행정을 일사불란한 일원체제로 가동시키며 높은 효울성을 보이게 마련이다. 따라서 진시황은초기에 군현제의 실시, 도량형과 문자의 통일, 법치사상에 입각한 분서갱유의 단행등 강압적인 조치를 통헤 진왕조의 권력을 공고하게 쌓아갔다.
 
하지만 강압통치는 그만큼의 반발이 수반되게 마련이다. 탄력이 클 수록 반작용도 크다는 의미이다.진시황의 강압정책은 6국의 백성들을 진나라의 깃발 아래 일원화 시킬 수가 없었다. 따라서 6국의 백성들은 진시황이 죽자 어눌렸던 반발의 감정을 일시에 터뜨렸다. 이로부터 중국은 또다시 전국시대와 같은 혼란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혼란의 국면에 영웅은 출현하고 영웅의 곁에는 언제나 모사꾼과 유세객이 모여들었다.
 
괴철은 이런 혼란한 시대에 등장하였다. 혼한한 만큼 기회가 주어지는 난세에 그는 결연하게 옷깃을 여미고 세상에 나타났다.
 
 
 
 
진승과 오광이 진(秦)나라의 폭정에 항거하여 농민봉기를 일으킨 후에 무신(武臣)은 진왕(陳王) 진승의 명령을 받아 북으로 황하를 건너 하북의 영웅들과 함께 10여개의 성을 함락시키고 범양(范陽)으로 진격하였다.
 
범양성의 백성들은 무신에 대항하여 단단히 방어할 채비를 갖추었다. 그렇지만 범양현령은 진왕조가 너무 쉽게 무너지는게 안타까웠고, 쓰러져가는 진왕조를 위해 헛된 목숨을 버리고도 싶지 않았다. 다만 무신이 관용을 베풀지 않을까 그게 두려워 방비를 갖추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상 무신은 군현의 관리들에 대해서 선정(善政)과 학정(虐政)의 여부를 고려하지 않고 가혹하게 처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범양현령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시위가 들어와 보고했다.
 
“밖에 한 유생이 찾아 왔습니다.”
 
범양현령은 만사가 귀찮다는듯이 손을 내저으며 쫒아 보내라고 하였다.
 
“현령 대인, 그 유생은 보통 사람이 아닌듯이 보였습니다. 머리에는 흰 두건을 쓰고, 어깨에는 붉은 수건을 걸쳤는데 대인을 만나뵌 연후에 말씀을 드려야 한다고 하는데 그 고집이 대단합니다.”
 
얼마 후 시위가 현청으로 한 유생을 데리고 왔다. 그 유생은 머리에 관(冠)을 쓰고 몸에는 장포(長袍)를 걸쳤으며 눈썹은 짙고 얼굴은 온화해 보였다.
 
“선생은 어디 사람이오? 본인에게는 어떠한 가르침이 있어 오시었소? 그리고 머리의 흰 두건과 어깨의 붉은 수건은 어떤 의미입니까?”
 
범양현령을 찾아 온 유생이 어깨를 당당히 펴고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은 범양에 사는 괴철이라고 합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현령이 곧 죽게 된다고 하기에 머리에 흰 두건을 두른 것이고, 다행히 현령께서 이 괴철을 만난다면 살 구멍이 있으니 행운을 상징하는 붉은 수건을 어깨에 걸치고 온 것입니다.”
 
범양현령은 속으로 놀라면서도 겉으로는 태연을 가장하고 괴철에게 말했다.
 
“나는 범양의 현령으로 위로는 조정(朝廷)이 산처럼 버티며 지켜주고 아래로는 군민(軍民)이 하나되어 떠받들고 있으며, 양식과 사기(士氣)도 충분하고 나이도 늙지 않았으니 무슨 죽음의 걱정이 있을 수 있겠소? 선생께서는 공연히 나를 조문(弔問)하러 오시었소. 설사 나에게 환난이 일어난다고 해도 알지도 못하는 선생에게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게 할 수는 없소. 선생은 혹여 ‘사람의 생사운명(生死運命)과 부귀(富貴)는 하늘에 달려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하였소?”
 
괴철은 범양현령의 말에는 아랑곳 하지 않은채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크게 웃었다.
 
“현령은 겉으로 아무런 척 하지 않지만 속은 아닐 것입니다. 이제 진왕조는 곧 무너집니다. 시황제는 선왕의 도(道)를 폐지하고, 백가의 책을 불살랐으며, 학정을 거듭하여 백성들이 드디어 진나라를 무너뜨리려고 일어났습니다.
 
진왕조는 그동안 제후국의 도성을 무너뜨리고 천하의 호걸을 수없이 죽였으며, 각지의 병기를 거두어 12개의 동인(銅人)을 만들어 숭배 했습니다. 그리고 진왕조는 또한 전국에 병사를 배치하여 백성을 감시하고 제업(帝業)을 영원히 이어가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시황제가 죽자 곧바로 천하에 난리가 일어났고, 진승과 오광이 깃발을 들었으며, 천하의 호걸이 그들 아래 모여 들었습니다. 진승은 이미 진현에서 진왕을 칭하였고, 그의 부장인 주문(周文)이 대군을 이끌고 관중(關中)으로 진격하였으며, 대장군 무신(武臣)은 하북을 향해 진격하며 서북의 여러 성을 일거에 함락 시켰습니다.
 
특히 무신은 진나라의 현령을 가장 악질적인 사람으로 여기고 무조건 살육하고 있습니다. 진왕조는 이제 곧 무너지는 판인데 무슨 산처럼 지켜준다고 합니까? 범양성에는 병졸이 오 천이며 사기도 땅에 떨어져 있습니다. 성민들도 어떻게 하면 목숨을 부지할까 궁리만 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범양성에는 비축한 병기도 많지 않고 식량도 없습니다. 무신의 대병력이 성 밖에 들이닥치면 태산이 무너지듯 범양성이 함락될 것입니다. 그때는 현령이 진나라에 충성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괴철은 범양현령의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힐끗 보고 더욱 몰아부쳤다.
 
“한걸음 양보하여 무신이 범양성의 공격을 잠시 미룬다고 해도 현령은 태평무사하게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성내의 공기는 예전과 다르게 변해 있습니다. 현령도 아시다시피 십 수년간 이곳에 근무한 관리중에서 백성의 재산을 수탈하고 백성의 안녕을 위협하지 않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습니까? 아이를 잃은 부모, 부모를 잃은 아이, 다리가 잘린 사람의 부인과 가족들, 얼굴에 칼자국을 당한 사람들,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난 백성들, 이들이 그냥 보고만 있을 것 같습니까? 그들은 아마 무신의 병력이 도착하기 전에 난리를 일으켜 관리들을 모두 죽이고, 무신이 도착하면 성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농민군을 반길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 잔혹한 진나라의 법률과 관리들의 학정 때문입니다. 지금 천하는 이제 진(秦)나라의 천하가 아닙니다. 진나라의 법률도 쪼개져 못쓰는 대나무쪽이 된지 오래입니다. 따라서 현령은 이제 성민의 분노를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현령을 위해 조문을 하러 온 것입니다. 그런데도 현령께서 죽음이 임박하고도 그렇지 않은 사람처럼 가장한다면 괴철은 이만 작별을 고하고 돌아갈까 합니다.”
 
범양현령이 갑자기 괴철의 손을 부여 잡으며 무릎을 꿇고 간절히 애원하였다.
 
“선생, 이 몸이 고명하신 선생을 몰라보고 크나큰 잘못을 범하였소. 만일 어깨의 붉은 수건처럼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가르침을 내려 주시오. 선생이 하라는대로 따르겠소.”
 
“현령께서는 그만 일어나십시오. 이 몸은 범양이 고향이므로 당연히 범양성의 백성을 위해 달려온 것입니다. 예로부터 때를 알고 힘쓰는 사람이야말로 호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현령께서는 무엇때문에 천하의 백성이 등을 돌린 진(秦)나라와 운명을 같이 하려고 하십니까? 가장 좋은 방법은 무신 장군에게 항복하는 것입니다.”
 
“이 몸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게 아니오. 하지만 무 장군이 관용을 베풀지 그게 염려가 되서 망설였던 것이오.”
 
“무신 장군이라면 괴철의 말을 가볍게 여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일전에 무신 장군은 범양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켜도 괴철이라는 선비는 절대로 죽이지 말라는 군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그것을 알고 찾아 왔습니다. 현령께서 이 사람을 무신 장군에게 사자로 보내준다면 그를 설득하여 범양성민의 안녕과 재산을 보호하고, 현령의 직책도 보장받도록 하겠습니다.”
 
범양현령은 괴철의 계책을 받아들이고 항복문서를 써서 괴철에게 건네주었다. 괴철은 항복문서를 가지고 무신의 군영에 도착하였다. 무신이 반갑게 괴철을 영접하면서 먼저 말을 꺼냈다.
 
“선생을 만나게 되어 반갑기 그지 없소. 일찌기 범양에 사람을 보내 선생의 근황을 탐문하였는데 이렇게 오셨으니 가르침을 청하오. 현재 진나라의 폭정에 대항하여 각지에서 의로운 영웅들이 들고 일어났는데, 그중에서 진왕(陳王)은 하북으로 북상하여 10여개의 성을 함락시켰고, 나머지 30여개 성은 아직도 진나라에 충성을 바치고 있는 실정이오. 나 무신은 진왕의 명령을 받아 출동하였지만 어느 성을 먼저 공격해야 좋을지 모르겠소. 선생께서 좋은 방안이 있다면 알려주시오.”
 
“장군은 반드시 전투를 치룬 후에 토지와 성을 점령하는데 이는 잘못된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장군께서 만일 이 몸의 계책을 따른다면 싸우지 않고 하북의 나머지 성(城)이 스스로 투항하도록 만들겠습니다. 장군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렇게만 된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소. 그렇지만 어떤 방법으로 적들을 굴복시킬 수 있단 말이오?”
 
“이 몸은 범양 출신으로 마침 그곳에서 오는 중입니다. 범양성은 이미 병졸과 성민이 하나되어 장군의 공격에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습니다. 범양성은 비록 작은 성채이나 성민이 수만 명이고, 병졸은 오천에 이릅니다. 만일 그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장군과 싸운다면 장군의 손실도 그만큼 예상해야 합니다.”
 
“진왕이 의로운 깃발을 들자 각지에서는 스스로 병기를 버리고 투항하였소. 그런데 무엇때문에 범양현령은 그렇게 죽기를 각오하고 대항하려 한단 말이오?”
 
“범양현령이 그러는 것은 오히려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탐욕스럽고 권위를 중하게 여기는 사람으로 본래는 장군에게 투항할 생각이었지만, 투항하면 혹시 장군에게 죽임을 당할까 그것이 염려되서 그처럼 방비를 단단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의 가능성은 현령의 학정에 불만을 품은 병사들이 그들의 현령을 죽이고 장군에게 저항을 하는 것입니다.”
 
무신이 괴철의 지적에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우리는 단번에 그들을 박살 낼 자신이 있소.”
 
“당연합니다. 범양성민이 죽기를 각오하고 방어한다고 해도 장군의 공격을 막아 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힘으로 정복하려고 한다면 진왕의 앞날에 막대한 장애를 불러 일으킬 것입니다. 이 몸이 알기에 장군은 폭정을 자행하는 진나라를 무너뜨리고 백성을 안녕하게 한다는 진왕의 생각을 받들어 풍찬노숙을 마다않고 전장을 누볐습니다. 그런데 처절하게 저항을 하는 범양성민을 도살한다면 장군의 명예는 물론이고 진왕의 사업까지도 타격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아직 항복하지 않은 여러 성은 더욱 두려워 장군에게 필사적인 저항을 할 것입니다. 장군께서는 아마 이렇게 되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겠소?”
 
“그야 물론 투항을 권유하고 최고의 예우를 보장해서 다른 지방의 저항심을 와해시켜야 합니다. 범양현령이 투항을 했는데 그를 죽이려 한다면 이 소문은 금방 다른 곳에 알려져 필사적인 저항을 불러 일으킬 것입니다. 그럼 장군의 연(燕)과 조(趙) 지역에 대한 공략은 쉽게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손자병법에 이르기를 ‘싸우지않고 적을 굴복시키는게 가장 좋은 계책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장군께서 범양현령을 죽이지 않고 지위를 보장한다면 그는 곧바로 투항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장군은 범양현령을 화려한 수레에 태워 전장을 누비면서 저항하려는 성민에게 보여주십시오. 그럼 그들은 장군의 약속을 믿고 다투어 항복할 것입니다. 투항을 해도 목숨이 유지되고 부귀영화가 보장되면 어느 누가 투항을 하지 않으려고 하겠습니까?”
 
무신은 괴철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범양성민의 재산과 목숨을 결코 헤치지 못하게 명령을 내렸다. 범양현이 투항을 하고도 성민이 모두 무사하고 재산의 피해도 없다는 소문은 하북의 여러 성에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무신은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30여개의 성을 점령할 수 있었다.
 
 
 
 
무신이 하북을 평정하고 조(趙)나라의 도성이었던 한단(邯鄲)에 이르렀을때, 그의 부장인 장이(張耳)가 무신에게 진왕의 세력에서 이탈하여 스스로 왕에 오르기를 청하였다.
 
“진왕(陳王)은 교만하고 의심이 많아 함께 기병(起兵)한 동지를 죽이고 있습니다. 만일 장군의 명성이 진왕보다 높아진다면, 진왕은 틀림없이 장군을 핍박하여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이곳 한단은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도성으로, 한 나라의 기틀을 세울 수 있는 지리적인 요충지입니다. 이곳에서 조왕(趙王)에 올라 천하를 도모하시기 바랍니다.”
 
무신은 장이의 요청을 받아들여 한단에서 왕위에 올라 조왕(趙王)이라 칭하였다. 진왕 진승은 당장에 무신을 토벌하려고 생각했지만 참모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아직도 진(秦)나라의 세력이 건재하므로 내부의 소모전보다 조왕을 인정하고 훗날에 문책을 하자는 생각이었다.
 
조왕에 오른 무신은 진여(陳余)를 대장군으로 삼고, 장이(張耳)를 상국으로 임명하였다. 이때 괴철은 무신에게 나아가 자신은 관직에 올라 구속받으며 생활하기 보다는 야인으로서 조왕에게 충성을 바치고 싶다며 관직을 사양하였다.
 
 
 
 
괴철은 고향인 범양에 돌아와 사람들과 술을 마시거나 바둑을 두면서, 천하의 정세를 조심스럽게 관망하였다. 어느 날 제(齊)나라 출신의 안기생(安其生)이라는 친구가 괴철을 찾아왔다.
 
“천하의 흥망(興亡)이 파도처럼 굽이치고 있는 이 때에 괴 형은 이런 곳에 은거하여 소일만 하고 있으면 어떻게 하는가?”
 
“안 형, 현재의 정세는 명확하지 않으므로 경거망동을 해서는 안된다네. 무신이 조왕에 오른 후, 그의 참모인 장이는 진왕이 언젠가는 조왕을 칠 것으로 보고, 북으로 연(燕)과 대(代)의 땅을 아우르고, 남쪽으로 하남(河南)을 점령하여 세력을 키우면서, 진초(秦楚;진나라와 초의 땅에서 일어난 진왕 진승의 세력을 말함)의 격전을 관망하라고 무신에게 권하였네. 무신은 이를 받아들여 한광(韓廣)을 시켜 연(燕)의 땅을 공격하였고, 이량(李良)을 상산(常山)에, 장염을 상당(上黨)에 보냈으며, 서쪽으로 진격하여 진(秦)나라와 힘겹게 싸우고 있는 진왕(陳王)에게는 원병을 보내지 않고 있어. 그리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강동에서 항우(項羽)와 그의 숙부인 항량(項梁)이 회계군수를 죽이고 봉기를 하였으며, 패현의 유방(劉邦)도 소하(蕭何)와 함께 반진(反秦)의 깃발을 들었다네. 이처럼 하북의 정세는 아직은 누구도 알 수가 없는 상황이라네. 그런데 제(齊)의 땅은 어떠한가?”
 
안기생이 괴철의 말에 수긍을 하는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齊)의 땅에도 변화가 많다네. 진왕의 장군 주시(周市)가 위(魏)나라의 적현(狄縣)을 공격하고 있을때, 제나라의 왕족인 전담은 적현 현령을 죽이고 각지의 호걸들과 함께 ‘진나라를 무너 뜨리고 제나라를 복국한다는 반진복제(反秦復齊)’를 주창하며 스스로 제왕에 올랐지. 한편 주시는 위나라의 땅을 점령하고 공자인 고를 위왕(魏王)에 추대하고 물러났어. 명의상으로 이제는 초(楚), 조(趙), 제(齊), 위(魏)가 받들고 있는 진왕(陳王)이 진(秦)나라에 대항하는 천하의 영수이지. 항우와 항량은 물론이고 유방도 진왕을 승인했다고 하더군. 그러니 진왕에게 의탁하는게 어떻겠나?”
 
괴철은 안기생의 제안에 고개를 저으며 단호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진왕은 인덕(人德)과 재능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네. 지금의 지위와 세력은 형세(形勢)가 그렇게 만들어 준 것일 뿐이야. 천하의 백성들은 일찍부터 진(秦)나라의 폭정에 원한을 가지고 있었지만, 진왕조의 가혹한 법률과 보복이 두려워 감히 봉기를 일으키지 못헀다네. 비유하자면 반진(反秦)의 땔깜은 각지에 산재하였지만 누가 불을 지피지 못했던거야. 그런데 진승과 오광이 죽음을 무릎쓰고 봉기를 일으키자 그것이 불길처럼 번진것이지. 결코 진승이 치밀한 계획에 의거하여 그만한 세력을 키운게 절대로 아니야. 지금 진왕 진승의 부하들은 각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 아마 진왕은 천하의 주인이 되지 못할걸세. 조왕(趙王) 무신은 인물됨이 용렬하여 오래가지 못하고, 제왕(齊王) 전담과 위왕(魏王) 고도 나라의 기반이 튼튼하지 못해 힘들걸세. 옛 말에도 있지 않나? 지네는 죽어도 쉽게 넘어지지 않는다. 진(秦)왕조가 비록 붕괴 직전에 있다지만 그렇게 쉽게 쓰러지지는 않을거야. 그래서 나는 자네에게 쉽게 주군을 선택하지 말라고 충고하는거야.”
 
“그럼 항우와 유방은 어떠한가?”
 
안기생이 다시 괴철에게 물었다.
 
“유방은 출신이 건달이라 그의 재능을 믿을 수 없지만 그 아래에는 오히려 인재가 많이 모여 앞날을 예측할 수가 없으며, 항우는 초(楚)나라의 명문세가 출신으로 자못 천하 영웅들의 호응을 받고 있으며 그의 숙부인 항량의 병법과 명성만 제대로 배합된다면 아마 천하의 주인은 그에게 갈 공산이 크다네.”
 
“그럼 빨리 결정하세. 천하의 대세를 마냥 관망하다가는 오히려 늦을걸세. 항우의 세력이 가장 전망이 있다면 그곳에 의탁하여 그들의 허실(虛實)을 탐지하는게 어떤가?”
 
괴철은 안기생의 권고를 받아들여 항우의 세력에 의탁하기로 결정했다. 두 사람이 초(楚)나라로 가는 길목의 어느 역관에 머무르고 있을때 천하의 정세에 커다란 변화가 또 한차례 몰아쳤다.
 
진(秦)나라의 대장군 장한(章邯)이 이끄는 30만 대군이 진왕 진승의 부장인 주문(周文)의 대군을 격파하였고, 주문은 민지에서 자살을 하였다. 얼마후 농민봉기를 일으켰던 오광과 진승마저 부하에게 차례대로 피살되어 진왕(陳王)의 세력은 풍비박산이 났다.
 
안기생과 괴철이 초나라의 국경에 이르렀을때 조왕 무신이 부장인 이량(李良)에게 살해되었으며, 장이(張耳)와 진여(陳余)가 이량을 격퇴하고 조(趙)나라의 왕족인 조헐(趙歇)을 조왕으로 추대하였다는 소식이 들렸다.
 
또한 항우와 항량이 강동의 8천병력을 이끌고 양자강을 건너 서쪽으로 진격을 하자, 진영이 이끄는 이만 병력과 영포(英布)와 포(蒲) 장군의 세력도 항우의 세력에게 의탁하였다. 일시에 칠만 병력을 이끄는 대세력으로 급성장한 항우는 초회왕의 손자인 심(心)을 다시 초회왕(楚懷王)으로 추대하고 우이에 도읍을 하였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괴철은 안기생과 상의하여 발길을 우이로 돌렸다. 그 사이에 진(秦)나라의 대장군 장한은 주문을 격파한 여세를 몰아 위(魏)나라를 공략하였고, 포위된 위왕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제왕 전담은 위나라를 구출하기 위해 출전하였다가, 장한의 역습에 말려 피살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제나라의 잔여 세력은 곧바로 전가(田假)를 제왕으로 추대하였고, 전담의 당제(堂弟)인 전횡(田橫)은 북쪽으로 달아났다.
 
괴철은 천하의 정세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가지면서 예의주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秦)과 진(陳)의 격전이 이제 진(秦)나라의 장한과 초(楚)의 항우 사이로 옮기기 시작하였으며, 제(齊)나라의 세력이 급격하게 안정을 잃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항우는 장한에게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있는 제(齊)나라의 장군 전영(田榮)을 구원하기 위하여 장한을 공격하였고, 위기에서 벗어난 전영은 제(齊)나라로 돌아가 제왕 가를 몰아내고 전담의 아들인 전시(田市)를 새로운 제왕으로 추대하였다. 제나라의 상국(相國)에 오른 전영과 북쪽으로 달아났다가 다시 돌아와 대장군이 된 전횡의 세력에 힘입어 점차로 안정을 찾아갔다.
 
이에 초(楚)의 항우에게 의탁을 하는게 어떠냐고 제안하였던 안기생이 진초(秦楚)의 격전으로 정세가 불안해진 초(楚)보다는 다시 안정을 찾아가는 제(齊)나라로 돌아가 천하의 변화를 좀더 관망하는게 어떠냐고 말했다.
 
괴철과 안기생은 제(齊)나라로 돌아와 안가생의 집에 머물며 다시 때를 기다렸다. 이럴 즈음에 초의 항량(項梁)이 승승장구하는 초의 기세를 너무 믿고 장한의 병력을 얕잡아 보다가 역습을 받아 전사를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장한은 북쪽으로 황하를 건너 거록(鉅鹿)을 공격하였다. 초회왕은 송의(宋義)와 항우를 거록으로 파견하였다. 송의는 장한의 대군을 겁내 출전을 계속해서 미루었다. 항우가 송의를 죽여 전의를 가담듬고 초군(楚軍)의 주력을 이끌고 거록에서 진나라의 장한과 격전을 벌였다.
 
거록전투에서 장한이 이끄는 30만의 진군은 의외로 대패하여 전 병력이 전멸하였다. 대장군 장한은 가혹한 진나라의 법률과 문책이 두려워 항우에게 투항을 하였다.
 
괴철은 이 소식을 듣고 안기생에게 말했다.
 
“장한이 항우에게 투항을 하였다면 진(秦)나라의 주력은 무너진 셈이야. 이때 세상에 나가지 않으면 언제 기회가 다시 오겠는가? 빨리 짐을 꾸려서 항우에게 가보세.”
 
괴철과 안기생이 제(齊)나라를 떠나 조(趙)나라의 땅으로 가는 도중에 항우는 황하를 건너 함양으로 진격하는 중이었으며, 유방은 초회왕의 명령을 받아 관중을 공격하고 있었다.
 
이때 진나라의 승상인 조고는 진2세 호해를 죽이고 영을 진3세로 추대하였다. 하지만 진3세 영은 오히려 조고를 죽이고 유방에게 항복하였다. 항우는 유방이 먼저 함양에 입성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화를 내며 소리쳤다.
 
“내가 진나라의 주력군과 혈투를 벌이며 고전하고 있을때, 약삭빠른 유방은 오히려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쉽게 함양에 입성하여 나의 공(功)을 가로채는군. 절대로 그렇게 놔둘 수는 없다.”
 
항우가 함양성으로 내달리고 있을때, 괴철과 안기생은 급히 북상하여 낙양에서 항우의 부대와 만날 수 있었다. 항우는 스스로 몸을 의탁하러 온 두 사람을 참모로 삼았다. 이때 항우에게 항복한 장한의 병력 중에서 상당수가 반란을 꾀한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항우는 크게 노하여 서진(西進)을 멈추고 먼저 진나라의 항복군을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괴철이 적극 나서서 항우의 결정을 만류하였다.
 
“진나라의 항복군은 그 수가 이십 만입니다. 어떻게 한 칼에 모두 죽일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반란을 일으키려는 이유는 초군(楚軍)의 장령(將領)과 병사들이 이들 진군(秦軍)을 노예처럼 여기고 타박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미 유방이 함곡관을 막아 여러 제후들의 함양 입성을 막는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자신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만날 수 없다는 불안때문에 그렇게 동요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공(公)께서는 함곡관을 지나면 진군을 모두 고향으로 돌려보낸다는 약속만 하시면 그들은 동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십만의 숫자를 너무 가볍게 여기시지 마십시오. 이들이 함곡관을 돌파하는데 커다란 힘이 될 것입니다.”
 
항우는 괴철에게 알았다고 승낙을 하고 잠시후 영포(英布)와 포(蒲) 장군을 불러 대책을 다시 물었다. 그러자 이들 두 사람은 강경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군은 함곡관을 지나면 곧바로 우리의 명령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항복한 몇 명의 장수들만 남기고 모두 죽이는게 옳습니다.”
 
이날 저녁 영포와 포 장군은 항우의 명령을 받아 진군을 삼면에서 공격하였다. 진군은 포위가 뚫린 산쪽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이것은 진군을 유인하기 위한 함정이었다. 산에 미리 매복한 초군은 20만의 진군을 계곡에 몰아넣고 전멸시켰다.
 
괴철은 다음날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안기생을 찾아가 상의하였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았네. 항우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항복한 병사를 모두 죽이고 말았다네. 항우는 용맹은 하지만 지략이 부족하여 결코 대사(大事)를 이룰 수 없을거야. 나는 떠나겠네.”
 
“나도 같은 생각이야. 성격이 잔혹하고 인의를 헌신짝처럼 저버리는 항우와 폭정을 자행하는 진왕조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어. 그는 초나라의 명문가문의 후예인데 이처럼 잔인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
 
괴철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었다.
 
“나는 다시 동쪽으로 달아나서 기회를 엿보려고 하는데 자네는 어떻게 할터인가?”
 
“물론 나도 같이가야지. 천하의 주인이 유씨(劉)씨가 될런지 항(項)씨가 될런지 좀더 관망을 하자구.”
 
괴철과 안기생은 이튿날 항우에게 핑계를 대고 제(齊)나라로 달아났다.
 
괴철은 제(齊)나라에서 3년여를 소일하며 항우와 유방의 대결을 지켜보았다. 항우와 유방이 천하의 패권을 놓고 벌이는 초한전쟁은 아직도 어느 누가 승자가 될 수 있는지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한 고조 3년(서기전 204), 한왕 유방의 대장군 한신이 조군(趙軍)을 쳐서 진여(陳余)를 죽이고, 조왕 헐을 사로잡아 드디어 조(趙)나라를 평정하였다. 이어서 한신은 공격의 방향을 연(燕)의 땅으로 돌렸다.
 
이때 한왕 유방과 초패왕 항우는 성고에서 팽팽한 격전을 치루고 있었다. 유방의 유세객인 역이기가 제(齊)나라의 임치에 와서 제왕을 설득하여 한왕(漢王) 유방에 투항하게 만들었다. 연(燕)꽈 조(趙)의 땅을 점령한 한신은 방향을 동남쪽으로 틀어 제(齊)나라를 공격하다가, 역이기가 유세에 성공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공격을 멈추었다.
 
괴철은 바삐 짐을 꾸려 한신에게 의탁하였다. 한신이 괴철의 명성과 소문을 듣고 군영으로 불러들였다.
 
“선생은 범양인인데 어찌하여 제나라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오?”
 
“저는 본래가 조(趙)나라 사람인데 이곳에 오래살다 보니 제나라 사람이 다 된 것 같습니다.”
 
“먼길을 오시는 것을 보면 나에게 무슨 가르침이 있는가 본데, 나는 방금 제나라를 공격하려던 계획을 바꾸어 남쪽으로 달려가 한왕(漢王;유방)을 도우려던 참이오. 선생의 견해는 어떻소?”
 
“제나라는 한과 초의 틈에 위치하고 있어, 한(漢)에 귀속되든가 초(楚)에 귀속되든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장군께서는 어찌하여 제(齊)나라를 공격하다가 갑자기 멈추고, 그 병력을 남쪽으로 이동시키려 하십니까?”
 
“한왕이 역이기를 보내 제나라의 항복을 설득시켰기 때문이오. 더이상 제나라를 공격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오.”
 
괴철이 고개를 흔들며 단호하게 부정하였다.
 
“장군께서는 연조(燕趙)의 땅을 빼앗을때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렸는지 잊었습니까? 제왕이 역이기의 유세에 넘어가 한왕에 귀속하기로 약속을 한 것은, 장군이 제나라를 압박하는 형세(形勢)때문에 부득이하게 그런 것입니다. 만일 한군(漢軍)의 남쪽으로 이동하여 압박이 풀어지면 그들은 다시 한왕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초한전쟁의 추이를 보아가며 다시 눈치경쟁을 할 것입니다. 따라서 장군은 제나라를 공격하여 제군의 주력을 괴멸시켜야 합니다. 더욱이 한왕이 공격을 중지하라는 명령도 아직 내리지 않은 상태가 아닙니까? 이럴때 제나라를 공격하여 공을 세우고 장군의 세력을 이곳에서 키우는게 우선입니다. 지금 제군은 방비가 흐트러져 있습니다. 이 기회를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역이기가 아직도 임치에 있는데 내가 제나라를 공격하면 역이기의 생명이 위험하오. 내가 어떻게 한왕의 사신으로 온 역이기를 죽이게 할 수 있단 말이오?”
 
“장군, 한왕께서는 장군이 연조(燕趙)를 격파하고 그 여세를 몰아 제(齊)나라까지 평정하는 것을 염려하여 역이기를 보내 제나라의 항복을 권유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선 제나라를 평정하고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며 대처하는게 옳습니다.”
 
한신은 괴철의 계책을 받아들여 제나라의 평원진(平原津)을 기습하였다. 역이기의 유세를 받아들여 한(漢)에 항복하기로 결정하였던 제나라는 한신의 기습적인 공세에 제대로 방어 한 번 못하고 연전연패를 거듭하였다.
 
제왕은 한신의 군대가 도성인 임치로 진격하자 역이기를 살해하고 고밀로 달아났으며, 상국인 전횡은 박양(博陽)으로 퇴각하였다.
 
제왕 광(廣)은 항우에게 구원을 요청하고, 이를 받아들인 항우는 대장 용차(龍且)에게 20만의 병력을 내렸다. 그러나 적군을 가볍게 여기고 교만을 떨던 초의 장군 용차는 한신의 수몰작전(水沒作戰)에 말려 황하 도하작전에서 전멸하였다. 용차는 이 전투에서 피살되었고, 제왕 광도 포로로 잡힌 후 역이기를 죽인 죄명으로 참수되었다.
 
박양으로 퇴각한 제나라의 패잔병들은 제왕 광이 살해되었다는 소식에 눈물을 삼키며 상국 전횡을 새로운 조왕으로 추대하였다. 한신은 제군에게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은채 연이어 박양을 공격하였다. 제군은 방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한신의 군대에게 대패하였으며, 조왕 전횡은 이곳에서 전사하였다. 나머지 살아남은 제군의 패잔병은 양(梁)의 땅으로 피신하여 팽월(彭越)에게 투항하였다.
 
 
 
 
제(齊)나라가 완전히 평정되자 한신의 참모들은 그에게 제(齊)나라를 기반으로 삼아 스스로 왕위에 올라 천하를 도모하라고 권하였다. 한신은 결정을 미루고 괴철을 불러 의견을 물었다.
 
“이곳을 기반으로 제왕에 오르면 한왕의 옛 장수들이 반발을 하지 않을까 그게 걱정이오. 좋은 방법이 없겠소?”
 
“장군의 능력과 공로는 한왕의 어느 누구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한왕도 따지고 보면 서초패왕 항우에게서 한왕이란 책봉을 받았지만 지금은 그와 천하를 놓고 경쟁하지 않습니까? 옛말에 ‘천하사(天下事)는 힘이 있을때 움직이고 때가 되었을때 얻으라’고 하였습니다. 어떠한 방법도 자신의 힘과 시가가 맞을 때만 쓸 수 있습니다. 한왕은 지금 초왕과 다투느라 제(齊)나라를 경영할 능력이 없습니다. 장군께서 제왕에 올라 정세를 관망하시는게 좋습니다.”
 
“먼저 임시로 왕에 오른 후에 한왕의 반응을 보는게 좋지 않겠소?”
 
“그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허락을 한다면 정식으로 제나라를 접수하여 세력을 키우고, 반대를 한다면 원군을 보내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한신은 괴철의 말에 따라 서신을 한통 써서 사자를 한왕에게 보냈다.
 
이즈음 유방은 형양에서 항우에게 포위를 당하여 매우 위험한 처지에 있었다. 마침 한신에게 구원병을 청하려고 하는 중에 그가 보낸 사자가 형양에 도착하였다.
 
“대왕의 은덕으로 제의 땅을 정복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직 제의 땅은 내정(內政)이 불안하기 그지 없습니다. 남쪽은 초(楚)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언제 초(楚)에 투항할 지 모르는 실정입니다. 따라서 제가 이곳의 임시 왕으로 앉아 형세를 계속 지켜보아야 하겠습니다. 원컨데 대왕께서 그 사명을 한신에게 내려주시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한왕 유방은 한신의 의도를 파악하고 서신을 바닥에 내던지며 소리쳤다.
 
“내가 이곳에서 곤란을 겪고 있는데 원병을 보내 줄 생각은 하지 않고 제왕(齊王)이 될 생각만 하고 있다니......한신, 한신, 네가 그럴 수가 있단 말이냐?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내, 당장에, 당장에......”
 
장량과 진평이 재빨리 유방의 노여움을 진정시키고 귓속말로 계책을 내놓았다.
 
“대왕, 지금 이곳은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어서 한신이 제왕을 칭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만일 그를 핍박한다면 오히려 항우의 편을 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그를 제왕에 봉하시고 중립을 지키도록 놔두는게 좋습니다. 그런 연후에 다시 상황을 보아가며 대첵을 강구해도 늦지 않습니다.”
 
유방은 장량과 진평의 계책대로 한신을 제왕으로 책봉하고, 초패왕 항우의 후방을 치도록 요청하였다.
 
 
 
 
한신은 제왕에 오른 후, 날마다 열병식을 하거나 훈련을 관망하면서 결코 유방을 도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때 초패왕의 사신인 무섭(武涉)이 한신을 방문했다.
 
“진나라의 폭정이 심하여 천하의 백성이 일어나 진나라를 멸망시켰습니다. 전쟁에 공을 세운 장군들은 모두 왕이 되어 봉지로 떠났고, 전쟁은 끝나 백성은 오랫만에 평화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한왕은 한중(漢中)에서 세력을 모아 관중을 공격하여 초한전쟁을 도발하였습니다. 그는 백성의 안위는 안중에 없고 오로지 천하를 도모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초왕은 용력(勇力)이 있고 지모가 출중하여 초패왕이 되었습니다. 한왕은 이와 다릅니다. 그는 의심이 많고 부하들을 너무 업신여깁니다. 초왕은 몇차례나 한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관용을 배풀어 용서하고 촉한왕(蜀漢王)에 봉했는데, 그는 다시 약속을 어기고 초왕을 공격하였습니다. 한왕이 장군을 토벌하지 않고 제왕에 봉한 것은 초왕이 있기 때문입니다. 초왕만 없었다면 한왕은 곧바로 제나라를 공격하였을 것입니다. 이제 초한전쟁의 주도권은 장군에게 있습니다. 장군이 한왕을 지원하면 한왕이 승리하고, 초왕을 지원하면 초왕이 승리합니다. 하지만 한왕이 승리하면 장군은 곧바로 토벌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왕을 보장 받으려면 초왕과 연합해야 합니다. 그리고 장군은 초왕과 지난날에 교분이 있지 않습니까?”
 
한신이 무섭의 말에 가볍게 대답했다.
 
“나는 지난날에 초왕의 막하에서 낭중(郎中)이라는 작은 벼슬을 얻어 열심히 일을 했지만 나의 게책을 장군들이 받아주지 않았소. 그래서 나는 한왕에 투항하였던 것이오. 그런데 한왕은 단 한번 나를 보고 수십만의 대군을 지휘하는 장군에 임명하고 손수 입고 다니던 군복을 나에게 하사하였소. 그래서 나는 공을 세울 수 있었고 제왕에 오를 수도 있었소. 나를 이토록 믿고 끌어준 한왕을 배신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소. 그러니 선생은 초왕에게 돌아가 나의 고충을 바르게 전해주오.”
 
무섭은 한신을 설득시킬 수 없다고 판단하고 초나라로 돌아갔다.
 
 
 
 
괴철은 무섭이 아무런 성과없이 돌아가자 한신에게 천하삼분(天下三分)의 계책을 건의하였다. 괴철은 초한전쟁의 주도권은 이제 명백하게 한신이 쥐고 있다고 믿었다.
 
“처음에 영웅들이 의로운 깃발을 들었을때 그들의 목표와 지향점은 모두가 진(秦)나라를 엎어 버리는데 있었습니다. 진나라가 망한 후 초한전쟁이 일어나자 그때는 모두가 천하의 패권에 눈을 돌렸을뿐 백성의 안위는 집어 던졌습니다. 초왕 항우는 형양을 중심으로 탄탄한 기반을 닦았으며, 한왕 유방은 공현과 낙양 일대에서 세력을 키웠습니다. 하지만 한왕은 초왕에게 형양에서 대패하고, 성고에서 좌절을 겪었으며, 이제는 남양군의 엽현으로 퇴각하여 겨우 대항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초한전쟁의 결과는 알 수가 없습니다. 신이 보기에는 어느 영웅이 나타난다고 해도 이런 혼란한 형세는 수습할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수십만의 병력을 보유한 대왕께서 개입해야만 수습할 수가 있습니다. 제나라는 병력, 양식, 지리적 잇점이 어느 지역보다 풍부하기 때문에, 당연히 장군이 한왕의 편을 들면 한왕이 승리하고, 초왕에게 기울면 초왕이 승리할 것입니다. 따라서 초한전쟁의 승리는 장군의 의중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렇다면 선생은 내가 어떻게 해야 좋겠소?”
 
“장군은 초한의 세력을 팽팽하게 유지시켜 어느 한쪽이 승리하지 못하도록 하고, 아울러 초한 양쪽이 모두 장군에게 의지토록 하여 형세를 제나라에 유리하게 만드십시오. 이것이 이른바 신이 제안하는 초, 한, 제의 ‘천하삼분지책(天下三分之策)’입니다. 제나라의 풍부한 토지, 백성, 양식, 병력과 대왕의 현명이 보태지고, 징군께서 정복한 북서쪽의 연조(燕趙) 세력을 끌어안으며 변화를 기다리십시오. 장군이 초한의 전투를 중지시키고 천하에 안녕을 가져온다면 각지의 제후들과 백성들이 장군의 은덕을 칭송하고 다투어 투항 할 것입니다. 그냥 굴러오는 천하의 패업을 스스로 포기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한신은 내심으로 괴철의 계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유방이 처음에 자신을 무시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을때, 소하가 달밤에 쫒아와 만류하던 광경이 떠올랐다. 소하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한왕의 대장군이 될 수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한왕 유방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최고의 예를 갖추어 단(壇)을 설치하고 장군의 직책을 내린 은덕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는 한동안 생각한 끝에 괴철에게 입을 열었다.
 
“한왕은 나의 재능을 인정하여 장군의 직책을 내려주었소. 그런데 내가 어찌 그 은덕을 저버린단 말이오? 나는 한왕을 대신하여 연, 조, 제의 땅을 점령하여 이곳을 통치하고 있을 뿐이오. 한왕이 천하의 주인이 되어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면 나는 그저 한 신하의 입장에서 논공을 받고 싶을 따름이오.”
 
괴철은 스스로 한왕의 신하로 만족하려는 한신의 말에 곧바로 반박하였다.
 
“장군은 한왕의 은덕을 생각하여 그를 위하여 만세에 남는 공덕을 세우고자 하지만, 그것은 커다란 착오입니다. 예전에 상산왕(常山王) 장이(張耳)와 성안군(成安君) 진여(陳余)는 평민의 신분이었을때 생사결의를 맺은 의형제였습니다. 하지만 장군이 된 이후 장견과 진택(陳澤)의 반목에 얽혀 서로 원수가 되었습니다. 상산왕 장이는 항우를 배신하여 항우의 혈족인 항영의 목을 베어 한왕에게 투항하였고, 한왕은 저수의 전투에서 장이의 친구인 성안군 진여를 죽였습니다. 이 두 명은 의형제를 맺고 봉기를 일으켰지만 결과는 전혀 서로 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무엇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까? 재해는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장군께서는 지금 한왕에게 자신의 충성을 진심으로 실천하고 있지만, 장군과 한왕의 교분이 상산왕 장이와 성안군 진여보다 깊고 튼튼하다는 믿음이 있습니까? 장군과 한왕의 틈새가 장견과 진택보다 크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까? 한왕이 장군을 제왕에 봉한 것은 진심에서 우러나온게 아니고 상황이 만들어준 임시방편에 불과합니다. 만일 초왕 항우의 세력이 약했다면 장군은 결코 제왕이 될 수 없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것은 한 산에 두마리의 호랑이가 살 수 없는 이치와 같습니다.”
 
괴철은 조용히 듣고 있는 한신을 힐끗 바라보며 계속 말을 꺼냈다.
 
“예전에 월(越)나라의 대부였던 문종은 멸망직전의 월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월왕 구천을 천하의 패자로 만들었지만 훗날 그는 월왕 구천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를 두고 ‘들판의 짐승을 모두 잡으니 사냥개를 삶아 먹고, 적국이 멸망하니 충신을 죽인다(野獸盡 走狗烹, 敵國破 謀臣亡)’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우정을 놓고 보면 장군과 한왕은 장이와 진여보다 깊지 않으며, 충성을 놓고 보면 장군과 한왕은 문종과 월왕 구천보다 더하지 않습니다. 예로부터 지혜와 용기로 주군을 놀라게 한 신하는 항상 위험이 온다고 하였습니다. 장군의 공로는 한왕을 도운 정도의 공로가 아니라 천하를 놀라게 할 만큼의 공로입니다. 장군은 하양(夏陽)에서 황하를 건너 안읍을 쳐서 위의 땅을 평정하고, 북쪽으로 대(代)를 공격하여 대의 상국인 하열(夏說)을 포로로 잡았으며, 정경으로 나아가 상안군을 죽이고 조(趙)나라를 평정하였으며, 연(燕)나라를 압박하여 항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방향을 돌려 제(齊)나라를 공략하여 제왕이 되었습니다. 더욱이 초왕의 병력 20만을 전멸시키고 대장군 용차(龍且)를 전사시켰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천하를 뒤엎을 공로입니다. 장군이 만일 초왕 항우에게 의지한다면 항우는 결코 장군을 신임하지 않을 것이며, 한왕에게 기울면 한왕은 항상 불안과 두려움에 떨면서 장군을 견제할 것입니다. 이 점을 생각하신다면 장군은 신의 뜻을 받아 주셔야 합니다.”
 
“선생의 충고를 감사히 받겠소. 나에게도 생각할 기회를 주시오.”
 
한신이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자 괴철은 다음 기회에 다시 설득하는게 좋다고 판단하였다. 괴철이 물러가자 한신은 조용히 자신의 앞날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괴철이 한신을 설득하기 위해 인용한 두 개의 이야기는 그 내용이 이러했다.
 
장이는 항우와 함께 함곡관을 넘어 함양에 입성했다. 항우는 논공행상을 하면서 장이를 상산왕(常山王)에 봉하고, 출전을 하지 않은 진여는 남피후(藍皮侯)로 봉하고 성안군(成安君)이라 불렀다.
 
장이와 진여는 모두 위(魏)나라의 대량(大梁) 사람으로, 소년시절부터 형제처럼 지냈다. 진승이 봉기를 일으키자 그에게 의탁하여 장군이 되었고, 후에 무신과 함께 하북을 공격하는 길에 나섰다. 무신이 조왕(趙王)을 칭한 후에 장이는 상국이 되었고 진여는 대장군에 올랐다.
 
무신이 부하인 이양에게 살해되자 장이와 진여는 이양을 격파하고 조나라의 왕족인 헐을 조왕으로 추대하였다. 진(秦)의 대장군 장한이 조나라의 도성인 한단을 공격하자 장이와 조왕은 거록으로 달아나고, 상산왕 진여는 상산의 병력 3만명을 이끌고 거록의 근처에서 멈춘채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였다.
 
장한의 이십만 대군에게 포위를 당한 장이는 진여에게 구원병을 요청하였지만, 진여는 들은체도 하지않았다. 장이는 장염과 진택을 진여에게 보내 질책을 하였다. 진여는 할 수 없이 5천의 병력을 장염과 진택에게 보냈다.
 
장염과 진택의 오천 병력은 진군(秦軍)과 교전을 벌였지만 한꺼번에 모두 전멸하였고, 두 장군도 전사하였다. 이때 항우가 거록에서 장한의 이십만 병력을 대파하고 조왕 헐과 장이를 위기에서 구출하였다. 천하의 제후들은 이때부터 항우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장이는 진여를 불러 제대로 구원병을 보내지 않은 진여의 조치를 힐책하였고, 화가 난 진여는 장군의 인(印)을 장이에게 내던졌다. 이후로 두 사람의 사이에는 틈이 가기 시작하였다. 진나라의 함양성을 공략한 후 항우는 장이를 왕으로 봉하고 진여를 후(侯)로 봉했다. 진여는 점점 불만이 쌓였고 드디어는 제(齊)나라의 세력과 연합하여 장이를 습격하였다. 장이는 패주하여 한왕 유방에게 투항을 하였고, 조왕은 진여를 대왕(代王)으로 봉해 자신을 돕도록 하였다.
 
그런 후에 한왕의 명령을 받은 한신이 정경을 공략하고, 저수에서 진여를 죽였으며, 한왕은 장이를 새로운 조왕(趙王)으로 임명했다. 이렇게 해서 장이의 진여의 결말은 한명은 조왕(趙王)이 되고, 다른 한 명은 죽음으로 끝을 맺었다.
 
 
 
 
한왕 3년(서기전 204), 유방은 성고를 버리고 남양으로 물러났다. 이 시기에 팽월(彭越)은 하비의 초군을 크게 이겼다. 초왕 항우가 팽월을 치기 위해 대군을 이끌고 하비로 이동하자 유방은 다시 성고로 돌아왔다. 항우는 팽월을 격파하고 형양을 공략하여 한왕의 장군인 주가(周苛), 종공을 죽이고 한왕(韓王) 신(信)을 포로로 잡았다. 바야흐로 성고에 있는 유방은 항우에게 완전히 포위를 당하였다. 이때 한왕의 장군인 하우영이 유방의 복장을 하고 거짓으로 항복을 하는 사이에 유방은 남문으로 빠져나가 수무(修武)로 달아났다.
 
한신과 장이는 이즈음 조(趙)나라를 평정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때 한왕이 사자를 조(趙)나라로 보내 한신과 장이의 병력을 모두 유방의 직속군으로 차출하고, 한신과 장이에게는 새로운 병력을 조직하여 동쪽의 제(齊)나라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전달하였다.
 
일시에 직할 병력을 빼앗긴 한신은 일반 백성을 병사로 모집하여 단시일 내에 정예병으로 만들었고 결국은 제(齊)나라를 공략하였 제왕(齊王)의 오늘에 이르렀다. 그래서 천하를 통일한 후 유방은 한신의 그 능력을 두려워해 결국은 한신을 죽이게 되는 셈이다.
 
 
 
 
괴철은 며칠 후 다시 한신을 방문하여 결단을 촉구했다.
 
“장군, 생각을 정리하였습니까? 지금이 결단의 시기입니다. 기회를 잃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예로부터 대사(大事)를 이룬 사람은 과감하게 결정하고 시기를 잃지 않았습니다. 참모의 직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는 성사(成事)의 징조이고, 계책을 주도면밀하게 설계하는 행동은 생사존망의 열쇠입니다. 옛 말에 ‘작은 일에만 밝고 그 일에만 신경쓰는 사람은 국가대사와 같은 큰 일은 제대로 살피지 못하며, 지식으로 판단하고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재앙을 피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머뭇거리는 맹호는 맹렬하게 달려드는 말벌보다 못하고, 주저하는 용사(勇士)는 과감히 행동하는 필부(匹夫)보다 못하다는 속설이 떠도는 것입니다. 성공의 여부는 오로지 과감한 행동과 의연한 결단만이 보장합니다. 기회를 잃지 마십시오. 기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한신은 괴철의 요구에 계속 머뭇거리면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는 한왕 유방을 배신할 수가 없었고, 한왕이 결코 자신의 봉지인 제(齊)를 빼앗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버릴 수 없었다. 결국에 한신은 괴철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선생의 견해를 따르지 못하겠소. 한왕은 나를 후대(厚待)하였는데 어찌 그를 배신할 수가 있겠소?”
 
괴철은 한신의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스러운 표정으로 크게 웃으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괴철은 처소로 돌아오면서 소리쳤다.
 
“소인에게 의탁하여 천하를 도모하려던 내가 바보로다. 이런 자의 밑에서 어찌 마음놓고 신하의 노릇을 할 수가 있겠는가? 하필이면, 하필이면, 이런 자의 밑에서, 하하하......”
 
한신은 괴철의 힐난과 질책의 소리를 그냥 묵묵히 들을 뿐이었다. 처소로 돌아온 괴철은 과감성과 결단력이 없는 한신은 결코 성공할 수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한왕에 대한 충성을 바꾸려 하지 않는 한신이 비밀을 지키려고 괴철 자신을 죽일 것으로 예상하고 대책을 세웠다.
 
괴철은 이튿날부터 갑자기 미친척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 곳에서 방뇨하고, 미친듯 울부짖거나 소리를 질렀다.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거나 옷을 갈기갈기 찢으며 춤을 추었다. 사람들은 그가 드디어 미쳤다고 여겼다.
 
한신은 괴철이 미쳤다는 보고를 받고 괴철의 처소를 찾았다. 사람들의 말대로 괴철은 거의 폐인처럼 행동했다. 이후로 한신과 그의 부장들은 괴철에게 더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 후 괴철은 한신을 떠나 아무도 알 수 없는 먼 곳으로 달아났다.
 
한신은 그제서야 괴철의 행동을 의심하였다. 하지만 그동안의 정리를 생각하여 더이상은 괴철을 부르거나 추격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괴철의 제안에 따라 한왕의 파병 요청을 받고도 섣불리 병력을 보내지 않고 천하의 정세를 관망하였다.
 
 
 
 
이때에 한왕 유방은 초왕 항우와 해하에서 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신과 팽월은 여전히 파병을 머뭇거렸다. 유방은 장량의 계책을 받아들여 한신과 팽월에게 많은 토지를 내리고 이들에 대한 믿음을 표시하였다. 그제서야 한신은 30만 대군을 이끌고 유방의 진영에 합세하였다. 초한전쟁은 해하에서 마지막을 장식하였다. 이 전투에서 대패한 항우는 오강에서 자결을 하였고, 유방이 드디어 천하의 주인이 되었다.
 
한왕 유방은 정도(定陶)로 이동하던 중에 갑자기 한신의 군영에 들이닥쳐, 제왕 한신의 병권(兵權)과 봉호(封號)를 거두고, 전혀 기반이 없는 초왕(楚王)으로 봉하고 그곳에 보냈다.
 
한신이 초(楚)나라에 도착한지 얼마되지 않아, 한고조의 제위(帝位)에 오른 유방은 운몽(雲夢)에서 각지의 제후들을 접견한다는 이른바 ‘남유운몽(南遊雲夢)의 계책’으로 한신을 불러들인 후, 모반을 하였다는 죄명을 씌워 한(漢)나라의 도성인 장안(長安)으로 압송하였다. 수레에 묶여 장안으로 압송당하던 한신은 그제서야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며 중얼거렸다.
 
“하하하, 교할한 토끼를 잡으니 날랜 사냥개를 잡아먹고, 하늘을 나는 새가 모두 떨어지니 필요없는 화살을 치우는구나(狡兎死 走狗烹, 飛鳥盡 良弓藏).”
 
한고조 유방은 장안으로 압송당한 한신을 죽이지 않고 낙양(洛陽)으로 유배시켰였다. 만일 개국공신인 한신을 죽인다면 천하의 제후들과 장군들이 한고조 유방을 믿지않고 연쇄적으로 모반을 일으키지 않을까 그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한신은 낙양에서 회양후(淮陽侯)라는 봉호(封號)에 만족하며 그곳에서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한 고조 10년(서기전 197년), 조국(趙國)의 상국인 진희가 반란을 일으켰다. 한고조 유방이 친히 대군을 이끌고 출정하였다. 한고조 유방의 부인인 여태후(呂太后)와 재상인 소하(蕭何)는 장안에 남아 있으면서 낙양에 있는 한신이 이 틈을 타서 다시 재기하지 않을까 염려가 되어 장안의 장락전(長樂殿)으로 한신을 불러내 모반죄를 되집어 씌워 처형하였다.
 
한신은 죽으면서 지난 날 괴철의 건의를 과가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자신의 실책을 한탄하였다.
 
“내가 바보였구나. 그때 괴철의 말만 들었어도 오늘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천박한 여자에게 속임을 당해 죽지도 않았을 것이다.”
 
여태후는 한신의 참모와 장군은 물론이고 3족을 모두 잡아 죽여 후환을 없앴다. 유방은 진희의 반란을 평정하고 장안에 돌아와 한신이 죽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한신이 죽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소?”
 
“괴철의 말을 따르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어요.”
 
“괴철이 도대체 누구요?”
 
“한신의 참모로 있던 유세객인데, 그 자가 한신에게 한왕을 배신하고 천하를 셋으로 쪼개어 가지라고 유혹한 놈이에요.”
 
유방은 곧바로 전국에 조서를 내려 괴철을 잡아들이라고 하였다. 제국(齊國)의 상국으로 임명된 평양후(平陽侯) 조참(曹參)은 제국의 군현 관리들에게 가능한 빨리 괴철을 사로잡아 오라고 독촉하였다.
 
괴철은 한신의 군영에서 달아나 안기생과 함께 산으로 숨어 들어갔다. 이때 괴철을 잡는다는 방문(榜文)이 곳곳에 붙었고 그 소식도 산간벽지까지 들려왔다. 괴철은 안기생에게 자수를 하겠다는 결심을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이곳은 절대로 안전해서 어느 누구도 찾지 못할걸세.”
 
“그것때문이 아니야. 만일 나를 잡지 못한다면 유방은 나와 그대의 친척들을 잡아다 문초를 할걸세. 죄없는 그들을 고생시킬 수가 없어.”
 
“하지만 자네가 자수를 하는 순간에 죽음을 면치 못할거야.”
 
“염려말게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는 법이야. 반드시 활로(活路)를 찾을테니 기다리고 있게나.”
 
괴철은 안기생과 이별을 하고 임치성에 들어와 조참에게 자수를 하였다. 조참은 괴철의 명성을 아깝게 여기면서 수레에 태워 장안으로 그를 압송하였다. 괴철이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은 유방은 괴철을 직접 심문하기로 결정하였다.
 
“네놈이 회양후(淮陽侯)에게 모반을 꼬득였던 괴철이냐?”
 
괴철은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떨지않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렇소. 내가 그에게 모반을 부축였소. 나는 그에게 천하삼분(天下三分)의 계책을 제안했소. 그러나 한신은 과감성과 결단력이 부족하여 실패하고 말았소. 만일 회양후가 나의 건의를 받아들였다면 나 괴철에게 오늘과 같은 일이 벌어질 리가 있었겠소?”
 
유방은 조금도 굽히지 않고 두 눈을 똑바로 뜬 채 대답하는 괴철을 끓는 가마솥에 팽사(烹死)시키도록 명령했다.
 
괴철은 하늘을 우러르며 탄식했다.
 
“아, 원통하고 억울하다. 천하의 괴철이 팽사를 당하게 되다니.”
 
“무엇이 원통하단 말이냐? 모반죄는 9족을 멸하는 중죄라는걸 모르더냐?”
 
“진왕조의 기강이 무너지고 백성이 등을 돌리자, 천하의 영웅들이 들고 일어나 진나라를 무너뜨렸소. 이때에 무슨 군신(君臣)의 가름이 있으며, 모반의 죄가 있단 말이오? 도척의 개도 요순을 보면 짖는다는 말을 모르오? 이때에 개에게는 요순이 성인군자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소. 오직 주인의 명령만 따를 뿐이오. 이 괴철도 마찬가지였소. 나에게는 한신이 주군이었고 그를 위해 계책을 올렸을 뿐이오. 이때에 얼마나 많은 호걸들이 다투어 칭제(稱帝), 칭왕(稱王) 하였소? 그런데 폐하(陛下)는 한신의 신하인 나는 죽이고 그들의 신하였던 사람은 어찌하여 죽이지 않는 것이오? 내개 억울 한 것은 오로지 나만 죽는다는 사실 떄문이오.”
 
한고조 유방은 괴철을 말을 듣고보니 일면은 그의 궤변이 타당하고, 일면은 그의 당돌함이 마음에 들었다. 유방은 괴철을 풀어주기로 하였다. 이것은 그를 살려주어 천하의 백성들에게 자신이 인재를 아끼고 능력을 보살피는 인덕(仁德)있는 황제라는 과시를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한왕 유방이 항우를 격파하고 한고조에 등극하자, 한신에게 패하여 숨어 지내던 지난날의 제왕 전횡(田橫)은 5백여명의 병사를 이끌고 요동의 섬으로 피하였다. 유방은 전횡이 그곳을 기반으로 다시 세력을 규합하여 모반을 일으킬까 걱정이 되어 그들을 모두 사면하고 낙양으로 전횡을 불렀다. 전횡은 한고조가 괴철을 과감하게 풀어 주었다는 소식을 듣고 유방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낙양에서 삼십리 지점에 위치한 어느 역관에 도착한 전횡은 유방의 사면령이 거짓이라는걸 깨닫고 어리석은 자신을 한탄하며 자살을 하였다. 유방은 그제서야 마음을 놓고 죽은 전횡을 극진한 예우로 장례를 치루어 주었다. 5백여명의 병사들은 전횡이 자살을 하였다는 소식에 통곡을 하고 모두 전횡의 묘 앞에서 자결하였다.
 
이로부터 괴철의 한마디 말에 제왕 한신(韓信)이 죽고, 역이기가 죽고, 전횡이 죽었다고 해서 ‘일구상삼걸(一口喪三傑)’이라는 말이 전내온다.
 
 
 
 
유방은 황제가 오른 그 해에 유(劉)씨의 자제들을 모두 왕으로 봉하고 스스로 신하를 두어 봉지를 다스리게 하였으며, 황제의 직할 구역에는 관리를 파견하여 다스렸다. 이른바 군국제(郡國制)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제후국을 통제하기 위하여 중앙정부에서 상국(相國)을 보내 왕을 보좌하도록 조치하였다.
 
유방은 조(曹)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유비(劉肥)를 제왕(齊王)에 봉하고 조참(曹參)을 상국으로 파견했다.
 
조참은 괴철이 유방에게 죽지않고 제국(齊國)으로 돌아오자 그를 조정으로 초빙하였다. 괴철은 안기생과 함께 제국(齊國)을 도우기로 결정하였다.
 
제나라의 임치는 백가사상이 꽃피운 유서깊은 학문의 도시이고, 수많은 인재가 널려 있었다. 그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동곽선생(東郭先生)과 양석군(梁石君)이었다.
 
일찌기 제왕 전영(田榮)은 항우가 제왕 가(假)를 옹립하자 항우를 배신하고, 각지에서 인재를 모아 세력을 확장하였다. 동곽선생과 양석군은 이때에 전영에게 의탁하였다. 전영의 반란이 실패로 끝나자 동곽선생과 양석군은 전영에 의탁한 자신들의 행동을 부끄럽게 여기고 깊은 산에 은거했다.
 
어느날 제나라의 현사들이 조참의 객경(客卿)이 된 괴철을 찾아와 말했다.
 
“조 상국의 면전에서 의연하게 시비(是非)를 가릴 수 있는 사람은 선생 뿐입니다. 지금 제나라는 선생을 얻고나서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나라에는 아직도 많은 인재가 필요한 때입니다. 그런데 선생은 어째서 동곽선생과 양석군을 조 상국에게 추천하지 않습니까?”
 
“그대들은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한 마을에 한 며느리가 살고 있었는데 이웃 여자들과 사이가 좋았습니다. 어느날 부얶에 있던 쇠고기가 없어졌습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몰래 훔쳐 먹었다고 질책하고, 남편은 그녀를 친정으로 쫒아 보내려고 했습니다. 그 며느리는 억울하다고 변명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그 며느리는 이튿날 친정으로 가면서 친하게 지낸 이웃의 여자들과 작별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웃집 여자가 ‘가지말고 잠깐 우리 집에 있으면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해 주겠어’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웃집 여자는 쇠고기를 잃어버린 집에 가서 ‘어젯 밤에 우리 집 개가 어디에서 한덩어리의 쇠고기를 물어가지고 왔는데, 마침 두 마리의 개가 서로 먹으려고 싸우는 바람에 모두 죽었어요. 그래서 개고기를 삶으려고 하는데 불이 꺼져서 불을 빌리려고 왔어요’라고 하였습니다. 그 집에서는 며느리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걸 알고 사방으로 수소문하여 며느리를 찾아 용서를 했습니다. 이웃집 여자는 결코 유세객이 아니었지만 불을 빌려 달라는 말 한마디로 성공했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그 시기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곧 조 상국에게 불을 빌려 달라고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괴철은 며칠 후 조참을 방문하여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과부중에서 어떤 여자는 남편이 죽자 사흘만에 개가를 하였고, 어떤 여자는 깊은 산속에 들어가 수절을 하였습니다. 만일 상국께서 이 여중에서 부인으로 삼는다면 어느 여자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선생, 그 말의 진정한 속뜻은 무엇이오? 나에게는 이미 부인이 있지만, 만일 내가 부인을 얻는다면 당연히 개가를 하지 않고 깊은 산속에 들어가 수절을 하는 여인을 선택할 것이오.”
 
괴철이 그제서야 빙그레 웃으며 계속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나라에서 신하를 선발하는데도 이와같이 의리와 충절을 보아야 합니다. 동곽선생과 양석군은 제나라의 현사로 지금은 은거하여 세상에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은 깊은 산속에 들어가 수절을 하는 과부와 같은 사람으로, 예의와 정성을 다해 모셔와야 합니다.”
 
조참은 괴철에게 혼쾌히 승낙을 하고 모든 문제를 괴철에게 위임했다. 괴철은 동곽선생과 양석군이 쉽게 하산을 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서신을 한 통 써서 사자에게 딸려 보냈다.
 
“천하는 이미 평정되고 백성은 안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제국의 조 상국은 현사를 에의로써 대접하고, 백성을 자식처럼 아끼고 있습니다. 현명한 선비라면 마땅히 조 상국과 더불어 치국안민(治國安民)의 고상한 뜻을 함께 논의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두 분은 일찌기 창생(蒼生;백성)을 구하겠다는 높으신 이상을 가진 선비로서 아직 그 뜻을 펼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조 상국께서 두 분을 극진히 모시고자 하오니 은거를 풀고 세상에 나와 재능과 지혜를 맘껏 펼치시기 바랍니다. 괴철”
 
그러나 동곽선생과 양석군은 조참의 초빙을 거절하였다. 괴철은 포기하지 않고 세차레나 계속해서 정중하게 두 사람을 초빙하였다. 동곽선생이 조참의 성의를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조 상국이 이처럼 깎듯이 우리를 초빙하는데 거절만 할 수가 없는 노릇이오. 더욱이 괴철 선생의 열정을 생각해서 하산을 하지 않을 수 없구려.”
 
양석군도 동곽선생과 같은 생각이었다.
 
“일찌기 선생과 내가 공맹(孔孟;공자와 맹자)의 도(道)를 배운 까닭은 일신의 안녕과 부귀를 얻기 위함이 아니라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 천하를 안정시키려 함이 아니겠소? 이제 세상이 우리를 필요로 한다니 하산하는게 좋겠소.”
 
조참은 동곽선생과 양석군을 극진하게 대접하고 이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였다. 괴철은 자신의 목적이 이루어지자 조정에서 조용히 물러나 책을 읽으며 말년을 편안하게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