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즈키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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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히즈키야는 즉위하자마자 종교 개혁을 착수했다(대하/2역대 26:2-). 그는 [[아하스]]에 의해 닫혀 있던 성전의 문을 열고 이것을 수리하였다. 그는 제사장과 위사람들을 모아 성전을 정결케 한후 제사제도가 재가동하게하였다. 유월절 절기를 지켰는데,남북으로 갈라진 이래 최대의 제사였다(대하 30:26). 이 제사에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으로 "[[아시리아]] 왕의 손에서 벗어난 자"(대하/2역대30:6)도 초청되어 그 일부는 기꺼이 이에 참가했다(대하/2역대 30:10-11, 왕하/2열왕 17:25-28). 이 유월절 제사 후 사람들은 유다의 모든 우상을 부숴버리고, 유다, [[벤야민]], [[에프라임]], [[므나쎄]]에 이르기까지 산당과 제단을 없애 버렸다(대하 31:1/2역대,왕하/2열왕 18:4). 히즈키야는 또 [[모세의 놋뱀]]이 우상 예배의 대상이 되어 있었으므로 이것마저 제거해 버릴 만큼 종교 개혁에 열심을 다하였다.
 
 
최대의 제사였다yx
 
== 즉위 당시 주변 정세 ==
당시에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아시리아]]가 힘을 키워 [[이스라엘 왕국|이스라엘]]의 사마리아 성을 함락시켜 [[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키고 [[이스라엘 왕국]]의 왕 [[호세아 왕]]을 포로로 끌고 갔다. 이에 히스기야는 각 지방의 성들의 방비를 튼튼히 하고 [[아시리아]]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 [[아시리아]]의 1차 침입 ==
이후 [[아시리아]]의 왕 [[산헤립]]이 쳐들어와 라키스를 공격하고 [[예루살렘]]을 포위했다. 이에 히스키야 임금과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 예언자가 하늘을 향해 부르짖으며 기도하자 하느님이 천사를 보내 아시리아 군대의 모든 지휘관과 장수를 쓸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산헤립]]은 수치심을 안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가 자신의 친아들들에게 암살당했다.
 
==말년==
=== 랍사게의 위협 ===
이 무렵 히스키야가 병들어 죽게 되자 하느님께 기도했고 표징을 주어 15년을 더 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마음이 교만해져 은혜에 보답하지 않아 하느님의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려졌다. 그러자 히스키야는 바로 교만했던 것을 뉘우쳤고 그 이후 히스키야 재위기 동안은 하느님의 진노가 닥치치 않았다.
 
히스키야는 대단한 부와 영광을 누려 은과 금, 보석, 향료, 작은 방패와 온갖 값진 기물들을 보관한 창고를 짓고 수확한 곡식과 포도주, 기름을 저장할 곳집, 온갖 가축 우리와 양 우리들도 지었다. 또한 기혼 샘의 위쪽 물줄기를 막아 뒤잇 성 서쪽 밑으로 돌려 끌어들이는 데에도 성공했다.
==말년==
{{이스라엘의 왕}}
{{토막글|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