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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안 22년(217)에 사마랑은 [[하후돈]]ㆍ[[장패]] 등과 오나라를 정벌하러 갔다. 거소(居巢)에 도착했을 때, 군사들 사이에서 역병이 크게 퍼져 사마랑은[[사마랑]]은 친히 순시하고 의약품을 보냈다. 그는 갑자기 병에 걸려 죽었는데, 이때 나이가 마흔일곱이다. 그는 임종하면서 베옷과 비단 두건으로 계절에 맞는 상복을 입히도록 명했다.⑹ 주의 백성들은 그를 추모했다. 명제가 즉위하여 사마랑은 아들 사마유(司馬遺)를 창무정후(昌武亭侯)로 봉하고 식읍 1백 호를 주었다. 사마랑의 동생 [[사마부]](司馬孚)는 또 아들 [[사마망]](司馬望)으로 사마랑의[[사마랑]]의 뒤를 잇게 했고, 사마유가[[사마유]]가 죽자 사마망의[[사마망]]의 아들 [[사마홍]](司馬洪)이 뒤를 이었다.
 
 
사마랑은[[사마랑]]은 죽음을 앞두고 장수와 병사들에게 말했다. "자사는 나라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고, 만리 밖으로 감독하는 사람으로 왔지만, 공업(功業)을 나타내지 못하고 병들었소. 스스로 구할 수 없는 것은 나라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오. 이 몸이 죽으면 베옷과 비단으로 만든 두건을 입히고, 계절에 맞는 옷을 입혀 절약하도록 하오. 나의 뜻을 어기지 마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