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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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조가 각기 맡은 임무는 고려의 6부와 별 차이가 없었는데, 다만 조선의 6조는 고려의 6부보다 정치적 중요성이 훨씬 커졌던 것이다. 이는 조선의 정치기구가 고려의 그것보다 관료적이었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육조거리와 위치==
육조거리는 육조가 있던 거리로 현재 광화문 앞에서 광화문 사거리까지 이르는 조선의 주작대로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경복궁이 준공되던 해인 1395년에 조성되었다. 주작대로를 기준으로 동쪽에는 의정부, 이조, 한성부, 호조가 자리잡았고, 서쪽에는 예조, 중추부, 사헌부, 병조, 형조, 공조, 사역원이 자리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시에 불타 없어졌으나 경복궁이 재건되지 않았으므로 관아거리로 이용되었다. 대원군이 경복궁을 복원할 때 삼군부가 예조 터에 자리하게 되었다.<ref name="박준범"/>
 
==유적==
2008년 [[광화문광장]] 조성 공사와 함께 육조거리에 대한 발굴이 시행되었다. 이순신 장군 뒤편을 4m 정도 파내려갔을 때 모래층과 펄층 밑에서 동물뼈와 철화백자 용문 항아리 조각 같은 백자편, 토기편 등이 발굴되었다. 이는 인공으로 조성된 육조거리 지층의 일부로 확인되었다. 이후 10개의 트렌치를 발굴하여 1968년에 철거한 전차 선로의 침목을 발견하였고 그 밑으로 4m를 조사하여 조선개국시 조성층, 임진왜란 전후 층, 고종때의 중건기 층, 일제강점기 이후 층을 발견하였다. 육조거리는 자갈이나 잡석을 깔지 않은 흙다짐 토층 도로였다.<ref name="박준범">박준범, 조선의 상징거리 주작대로를 발견하다, 문화재 사랑 2009.08, [[문화재청]]</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