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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까지 여전히 SA가 나치당의 주요 물리력이었으나, SS도 서서히 성장하고 있었다. [[1929년]] 1월, [[아돌프 히틀러|히틀러]]는 [[하인리히 히믈러]](이때 그의 계급은 [[SS제국지도자]]가 되었다)를 맡겼고, 히믈러의 목표는 당 내에서 엘리트 군단으로 SS를 키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SS는 여전히 매우 작은 조직이었다. 그가 SS의 지휘권을 인수했을때 총 대원수는 고작 290명에 불과했다. 히틀러는 1933년 즈음에는 효율적인 군대가 되기를 원했다. 히믈러는 지적 능력과 정치적 신념을 두루 갖춘 [[독일 사회]]의 엘리트를 대표하는 사람들을 SS로 임명했다(대개는 명예직이었다). 여기서 정치적 신념은 나치즘에 대한 동조 여부이며, 지적 능력은 인종주의에 대한 것이다.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히믈러는 SS를 1933년 말에 겨우 5만2천여 명으로 늘릴 수 있었다.
 
SS가 서서히 팽창하고 있던 같은 시기에 정권 장악 후 급격히 늘어난 SA의 총 대원수는 1933년 말에는 200만 명, 1934년에 전국적으로 400만 명을 헤아렸다.{{ref|sa1}} 히틀러의 오랜 동지였던 [[에른스트 룀]]이 지도하던 돌격대는 독일 국방군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려던 히틀러의 시도에 위협이 되었다. 또한, 히틀러가 독일 정부 내에서 확고한 지위를 굳히는데 필요한 지원을 해주던 독일 보수파와 히틀러와 관계에도 위협이 되었다. 히틀러와 그의 추종자들이 계속해서 혁명은 끝났다고 경겨망동을 삼가하라는 경고를 내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룀과 SA는 제2혁명을 주장했고, 사석에서 룀은 히틀러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말도 내뱉는 상황이 되었다. 히틀러와 돌격대 사이에 위기감이 고조될때, 히틀러는 SA의 행동에 대응하기로 결심했고, SS에 룀과 SA 고위 간부들을 제거할 것을 지시했다. 이것이 [[1934년]] [[6월 30일]] 발생한 [[룀 숙청 사건]](흔히 “긴 장검의 밤”이라고 불린다)이다. 룀과 기타 SA 고위 간부들 뿐만 아니라 반나치 또는 나치당이면서도 히틀러에 반대한 인사들이 이때 같이 숙청되었다. [[그레고르 슈트라사슈트라서]]나 [[쿠르트 폰 슐라이허]] 같은 인물들은 SA와 관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때 암살당한 사람들이다.
 
 
 
== 훈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