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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이력=사후에 영의정으로 추증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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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립'''(申砬, [[1546년]]~[[1592년]])은 [[조선]] 시대 장수로 [[임진왜란]] 첫해에 [[충주시|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펼치고 [[왜군]]과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한 사람이다. 본관은 [[평산 신씨|평산]](平山)이며, 자는 입지(立之)라 했다.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 생애 ==
[[1590년]] [[평안도]] 병마절도사에 보직되고 이듬해 [[한성부 판윤]]을 거쳐,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삼도 도순변사(三道都巡邊使)로 임명되어 싸움터로 떠날 때, 선조(宣祖)가 검(劍)을 하사하면서 격려해 주었다. 특히 요청하여 김여물(金汝杖)을 데리고 가고, 도중에서 병정을 모집하여 [[충주시|충주]]에 도착하였다. 이때 순변사(巡邊使) 이일(李鎰)이 상주에서 패하고 쫓겨 왔다. 신립은 그를 사형에 처하려 하였으나 재주를 애석히 여겨 선봉에 나서 싸워 속죄하도록 용서해 주었다.
 
김여물은 [[조령]](鳥嶺)에 진지를 구축하자고 건의했다. 그러나 신립은“적은 이미 고개 밑에 당도하였으니 고개에서 서로 부딪치게 되면 매우 위험하다. 더구나 우리 병정들은 아무 훈련도 받지 못한 장정들이니 사지(死地)에 갖다 놓기 전에는 용기를 내지 않을 것이다.”라며 마침내 [[탄금대]] 근처에 달천(達川)을 뒤에 두고 배수의 진(背水之陣)을 쳤다. 그러나 실상 신립은 기병전의 달인으로서 자신의 특기인 기병을 이용하여 왜구를일본군를 무찌름으로서 영원히 기병으로서의 자부심을 드높이기 위함이였다. 문제는 그 전투가 치뤄지던 1592년 4월 28일 당일 격전지인 충주의 날씨는 비가 왔다는 것인데 비는 기마전에 매우 불리한 조건이였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지휘하는 적은 조령을 넘어 산과 들에 가득차고, 위풍이 대단하였다. 그는 휘하의 여러 부대를 지휘하여 나가 싸워서 몸소 두 번이나 적진(敵陣)을 돌파하려 하였으나 비가 와서 땅에 진흙이 많아 말(馬)이 움직이는 데 불편한 데다가 적이 강해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어 적은일본군은 우회작전(迂廻作戰)으로 그들의 우측에 진출하여 동서에서 압도적인 세력으로 협공하였다.
 
이에 그는 탄금대(彈琴臺)에 돌아가서 김여물더러 임금에게 올리는 글을 짓게 하여 이것을 부하에게 주어 조정에 달려가서 바치게 하고는 김여물과 함께 적진에 돌진해서 10여 명을 죽이고, 두 사람이 다 강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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