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 정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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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동거 정부가 등장한 것은 몇 차례 되지 않지만, 각각의 사례는 대통령과 총리 간의 파워게임을 잘 보여준다.
==== 프랑수아 미테랑(대통령) - 자크 시라크(총리) 시기 (1986-1988) ====
:[[1986년]]의 총선에서, [[사회당 (프랑스)|사회당]]은 [[드골주의]]를 표방하는 [[공화국 연합공화국연합]](RPR)에 다수당을 내주었다. 이로 인해 [[사회당 (프랑스)|사회당]] 출신 대통령이었던 [[프랑수아 미테랑]]은 [[공화국 연합공화국연합]](RPR)을 이끄는 [[자크 시라크]]를 총리로 지명할 수밖에 없었다. [[미테랑]]과 [[시라크]]의 동거 기간 동안, 대통령은 그의 본연의 임무인 외치(外治)에 힘썼고 총리인 시라크는 내치(內治)에 집중하였다. 미테랑이 내치에서 거리를 두게 되면서, 시라크는 감세정책을 펴고 주요 기간산업의 사영화를 주도하는 등 이전의 미테랑의 개혁을 뒤집는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그러나 [[1988년]]에 실시된 대선에서, 미테랑은 시라크를 누르고 재선되었다. 이 여파로 그해 5월 10일, 시라크 총리가 사임하였고 미테랑은 그 후임으로 사회당의 [[미셸 로카르]]를 임명한다. 이로서 제1차 동거 정부는 막을 내리게 된다. 한편, 대선 이전인 [[5월 4일]]에 미테랑은 하원을 해산하는데 [[6월 5일]]부터 [[6월 12일]]까지 일주일간 시행된 재선거에서 사회당이 안정의석을 확보하여, 이후 미테랑은 사회당 단독 내각을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 프랑수아 미테랑(대통령) - 에두아르 발라뒤르(총리) 시기 (1993-1995) ====
:[[1993년]]의 하원총선에서 우파가 의석의 80%를 차지하는 압승을 거둠에 따라, 미테랑은 다시 한 번 [[공화국 연합공화국연합]](RPR)의 리더인 [[에두아르 발라뒤르]]를 총리로 지명하게 된다. 이로 인해 실시된 제2차 좌우 동거 정부는 [[1995년]] [[5월 18일]]에 [[자크 시라크]]가 대통령에 당선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 자크 시라크(대통령) - 리오넬 조스팽(총리) 시기 (1997-2002) ====
:[[1995년]]에 보수 진영의 [[자크 시라크]]가 진보 진영의 [[리오넬 조스팽]]을 누르고 프랑스 제22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미 [[1993년]]에 실시된 하원 총선에서 우파연합이 원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라크는 자신이 소속되어 있던 [[공화국 연합공화국연합]]의 [[알랭 쥐페]]를 총리로 기용한다. 제1당인 [[공화국 연합공화국연합]]과 [[프랑스 민주연합민주동맹]](UDF) 등에 고르게 안배된 범우파 내각은 당시 프랑스 사회의 높은 실업을 해소하고 [[유럽 연합의 경제 통화 동맹|유럽 경제통화동맹]](EMU) 가입 기준에 맞추기 위한 재정적자의 축소를 우선과제로 추진하였다. 그러나 고용확대정책이 생각보다 잘 추진되지 않았고,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사회보장제도의 축소는 전국적인 파업 등 프랑스 시민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1997년에 시라크 대통령은 계속적인 개혁정책의 이행, 순조로운 EMU 가입과 국내 범보수 세력의 유지를 위해 [[1997년]] [[4월 21일]]에 하원 해산을 발표하고, [[1998년]] 3월로 예정된 하원 총선을 앞당겨 실시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은 좌파연합이 총 의석 577석 중 과반수가 넘는 314석을 차지함으로서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시라크는 사회주의자 [[리오넬 조스팽]]을 총리로 임명할 수밖에 없었는데, 조스팽은 2002년 대선에서 패배할 때까지 총리로 재임하여 제3차 좌우 동거 정부는 가장 긴 햇수를 기록하게 되었다. 시라크는 이 정부를 '마비 정부'라 불렀는데, 실제로 그는 의회 내에서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때, 시라크의 정치적 영향력은 미미하였고 그는 좌파 정부의 개혁 정책에 어떠한 거부도 행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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