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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엽'''(許曄, [[1517년]] ~ [[1580년]])은 [[조선]]의 [[문신]]으로, 자는 태휘, 호는 초당, 본관은 [[양천 허씨|양천]]이다. 아버지는 군자감부봉사를 지낸 허한(許瀚)이다. 시호는 문간(文簡).
 
== 약력 ==
[[허균]]과 [[허성]], [[허봉]], [[허난설헌]]의 아버지이다. [[우성전]]의 장인이기도 하다. [[서경덕]](徐敬德)과 [[이황]](李滉)에게서 수학했으며 [[조선 명종|명종]]때 문과에 급제하여 장령에 이르렀다. 1551년 부교리를 거쳐, 1553년 사가독서(賜暇讀書)가 되고, 그뒤 장령으로 재직중 재물을 탐하였다 하여 파면되었다. 1559년 필선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성균관대사성·지제교를 거쳐 승정원 동부승지로 발탁됐다. 1562년 경연장에서 명종에게 [[기묘사화]] 때 죽은 [[조광조]]의 복권을 건의하였고 윤근수(尹根壽)·구수담(具壽聃)·허자(許磁) 등의 무죄를 주장하다가 다시 파직당했다. [[1563년]] [[이량]], [[이감]] 등의 탄핵을 받을 뻔하였으나 홍문관부제학 [[기대항]]이 이들을 탄핵하여 위기를 넘겼다. 그뒤 [[1575년]] 동인과 서인 사이에 당쟁이 일어났을 때 [[김효원]], [[이발]] 등과 함께 동인의 지도자로서 활약하였다. 이어 [[부제학]]을 거쳐 경상도 관찰사에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사퇴하였다. 일찍이 [[김정국 (1485년)|김정국]]이 엮은 《경민편》을 보충하기도 하였으며 《삼강오륜행실》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 기타 ==
도산서원의 건립을 지원하였고 향약(鄕約)의 실시를 건의하는 등 주자학의 보급에 힘쓰기도 했다. 일찍이 [[김정국 (1485년)|김정국]]이 엮은 《경민편》을 보충하기도 하였으며 《삼강오륜행실》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청백리에 등록되었고, 개성 화곡서원(花谷書院)에 제향되었다.
 
== 저서 ==
* 《초당집》
* 《전언주행록》
 
==관련항목==
* [[초당두부]]
* [[허균]]
* [[허난설헌]]
* [[허봉]]
* [[우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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