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경: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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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년]] [[조선 연산군|연산군]] 때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형 윤경과 함께 [[괴산군|괴산]]으로 [[유배]]되었으나, [[1506년]] [[중종 반정]]으로 풀려나왔다. [[조선 중종|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부수찬이 되었으나, [[기묘사화]] 때 갇힌 죄없는 사람들을 석방할 것을 주장하다가 [[김안로]]의 미움을 받고 쫓겨났다. [[1555년]] [[전라도|호남]]에 [[왜구]]들이 쳐들어오자, 전라도 도순찰사가 되어 이를 격퇴시킨 공으로 [[영의정]]에까지 올랐다. 그 후 나이가 많아 벼슬에서 물러났으나, [[조선 선조|선조]]에게 [[정몽주]]의 후손을 벼슬에 등용시킬 것을 건의하였으며, [[홍수]]와 흉년이 들었을 때에는 세금을 덜게 할 것을 부탁하여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기타==
아들 이덕열은 그의 사촌형제 이유경(李有慶)의 양자로 보냈다. 이덕열의 아들이 이사성으로 뒷날 [[허균]]의 사위가 된다.
 
 
== 주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