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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셋째딸 [[박근령]]은 [[2005년]] [[2월]], 이러한 주장을 담고 있는 서적이 부친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국내 출판사 대표인 아이필드 출판사 대표 유연식을 검찰에 고소했고 대법원 3부(주심 [[안대희]] 대법관)까지 올라갔으며<ref name="조선족1"/><ref name="한국1"/><ref name="조선족3">[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2081810195&code=940301 '독립군 토벌한 박정희' 역사서 명예훼손 무죄] 경향신문 2009년 02월 08일자</ref> [[1939년]], 박정희가 서명한 문경공립보통소학교 “성적통지표”와 [[1940년]], 박정희가 교직을 의원면직했음을 보여주는 교육 당국의 서류를 제출하였는데 이와 관련된 재판에서 [[안대희]] 재판관 등 재판부는 “그의 친일 행적 여부에 대해 논란이 있고 특설부대에 근무했는지도 한국현대사의 쟁점으로 계속 연구돼야”한다고 판결을 내린 동시에 “책에 적시된 내용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에 반한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이 허위임을 인식했다고 단정할 수 없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은 정당하다”며 무죄를 판결했다.<ref name="조선족1"/><ref name="한국1"/>
 
그러나 박정희는 [[1944년]] [[7월]] "만주군 육군 소위로 임관되어 열하성(熱河省) 주둔 보병 제8사단으로 배속되었다. 보병 8사단의 주 토벌 부대가 중국의 팔로군으로 당연히 팔로군 토벌 작전을 벌이는데 박정희는 제8단 단장의 부관으로 전투병력을 지휘하는 직책이 아니므로<ref>[http://www.dailian.co.kr/news/n_view.html?t_name=news&id=145572&listpage=n_list.html&kind=menu_code&keys=1&idx=&search=&id=145572&smenu=&sel=&date1=&date2=&date3=&smno=&sb_sbj=&sdescr=&sun=&so=&chit=N#N2 토론이 있는 인터넷신문 - 데일리안<!-- 봇이 붙인 제목 -->]</ref> 여기에 해당되지는 않는다."라고 데일리안이 주장하였다. 그러나 진중권은 박정희가 육사를 졸업하고 일본군장교로 임관된 곧 만주국 보병 제8연대의 소대장으로 임명되어 목단강 아래 있는 영안으로 파견된 곳은 이곳은 일찍이 노령 신한촌에 웅거하던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서진할 때의 요충으로서 한인 농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고 주장하였으나 <ref>[http://www.donga.com/fbin/output?f=todaynews&code=a__&n=200408040164&main=1 진중권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ref> 진중권의 주장과 달리 현행 국민공통 교육과정‘국사’교과서에서는 [[광복군]]을 비롯한 독립군 대부분이 근거지를 중국 내륙인 [[충칭]](重慶)으로 옮겼다고 서술하고 있다.<ref>국민공통 교육과정‘국사’교과서 P.93</ref> 또한 박정희와 같이 만주 제8단에서 복무한 신현준, 방원철 등은 [[오마이뉴스]]의 취재에서 당시 제8단 지역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전신인 [[팔로군]] 토벌을 위해 주둔하고 있었고있었으나 박정희는 복무 당시 팔로군 토벌 기회가 전연전혀 없었다고없었으며 놀고 술먹을 기회가 많았다고 증언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47&aid=0000049417&</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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