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3번째 줄:
 
== 초기생애와 활동 ==
발렌슈타인은 보헤미아의 헤르마니체에서 귀족 집안에 태어났다. [[올로모우츠]]에서 예수회 학교를 다녔다. 13세때 고아가 된 발렌슈타인은 숙부밑에서 자랐다. 숙부는 그를 [[슐레지엔]]의 [[골트베르크]]에 있는 신교문법학교에 보냈으며 [[1599년]]에는 [[알트도르프]]에 있는 신교대학에 보내졌다. 그는 [[1600년]]∼[[1602년]]에 독일·[[프랑스]]·[[이탈리아]]를 거쳐 널리 여행했는데, 이탈리아 [[파도바]]와 [[볼로냐]]에서 강의를 들었으며,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 [[미술]]과 [[건축]]에 취미를 갖게 되었다. [[1604년]] [[헝가리]]에 대항하는 보헤미아 파견대에서 복무했고, [[1606년]] [[가톨릭]]으로 개종해 [[합스부르크 왕가]]와 예수회의 환심을 사게 되었다.
 
13세때 고아가 된 발렌슈타인은 숙부밑에서 자랐다. 숙부는 그를 [[슐레지엔]]의 [[골트베르크]]에 있는 신교문법학교에 보냈으며 [[1599년]]에는 [[알트도르프]]에 있는 신교대학에 보내졌다. 그는 [[1600년]]∼[[1602년]]에 독일·[[프랑스]]·[[이탈리아]]를 거쳐 널리 여행했는데, 이탈리아 [[파도바]]와 [[볼로냐]]에서 강의를 들었으며,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 [[미술]]과 [[건축]]에 취미를 갖게 되었다. [[1604년]] [[헝가리]]에 대항하는 보헤미아 파견대에서 복무했고, [[1606년]] [[가톨릭]]으로 개종해 [[합스부르크 왕가]]와 예수회의 환심을 사게 되었다.
 
발렌슈타인은 예수회 고해신부의 주선으로 [[모라비아]]에 거대한 영지를 가진 늙은 [[체코]]인 미망인 루크레치에 넥쇼바(Lukrécie Nekšová)와 [[1609년]]에 결혼함으로써 풍족한 생활을 했으며, 특히 [[1614년]]에 그녀가 죽고 난 뒤 재산을 상속해 호사스럽게 지냈다. 그는 자신의 비용으로 장차 신성로마황제가 될 합스부르크 왕가의 페르디난트 2세에게 [[베네치아]]와 전쟁([[1617년]])을 치를 수 있도록 [[용병]]을 지원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