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조 (오호 십육국)"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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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은 304년에 자립하여 나라를 세우면서 국호를 한(漢)이라고 정하였다. 흉노와 한나라는 [[기원전 2세기]]에 형제의 맹약을 하였는데, 유연은 이 형제의 맹세를 근거로 이미 멸망한 형 한나라의 뒤를 이어 동생 흉노가 한나라를 건국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따라 유연은 [[한 고조]](高祖), [[후한 광무제]](光武帝), [[촉한 소열제]](昭烈帝) 등을 조상으로 추존하여 제사하였다.
 
유연은 한의 계승자를 자처하였으나 실제로는 한 왕실의 후예를 간접적으로 살해하였다. 산양공(山陽公)을 계승했던 [[유추 (산양공)|유추]](劉秋)의 죽음으로 인해 후한왕실 직계자손은 끊어지게 되었다. 또한 [[촉한]](蜀漢) 소열제(昭烈帝) [[유비]](劉備)의 자손은 [[성한]](成漢)으로 도망친 [[유현 (4세기)|유현]](劉玄)만이 살아 남고 나머지는 [[영가의 난]]에 휘말려 살해당하였다.
 
유요는 [[319년]]에 장안에서 국호를 조로 고치면서 한의 황제들에게 제사하던 것을 폐지하고 흉노의 선우인 모돈 선우를 모셨다. 이로써 한나라의 후예를 자처하던 흉노의 한나라는 사라지고 흉노의 후예를 자처하는 조나라가 성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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