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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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서는 [[리콴유]] 전 [[수상]]이 박정희에 대해 "아시아에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위대한 세 지도자로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와 중국의 [[덩샤오핑]] 그리고 한국의 박정희를 꼽고 싶다, 오직 일에만 집중하고 평가는 훗날의 역사에 맡겼던 지도자"라고 평가하며 그를 극찬하였으며<ref>[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6071465781 前 경제수석이 말하는 `경제부국 시나리오`‥`박정희는 어떻게 경제강국 만들었나` ]</ref> [[독일]] 정부 국정교과서에서는 박정희를 "강력한 손으로 남한을 농업 국가에서 산업 능력을 가진 국가로 이끌어낸 지도자"로 평가하며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에 대해 타 국가들의 경제성장 과정과 비교하여 '기적'으로 평가하였다.<ref>[http://olympic.segye.com/Articles/News/Article.asp?aid=20060730000441&cid=0101090300000&dataid=200607301534000106 독일 교과서"60년대 빈국서 한강의 기적 이뤘다"]</ref>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 전 [[말레이시아]] 총리는 "박 대통령은 매우 강한 지도자였으며 국부를 증진시킨 훌륭한 지도자"라고 평가하였으며 그가 추진한 ‘동방정책’또한‘동방정책’ 또한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정책을 벤치마킹한 결과였다고 한다. [[훈센]] 캄보디아 총리는 2009년 6월, 제주도에서 개최된 한ㆍ[[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하여 “캄보디아 경제발전을 위해 여러 사례를 연구했는데 박 전 대통령 모델을 가장 많이 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ref>http://news.mk.co.kr/outside/view.php?year=2009&no=550667</ref>
 
[[2004년]],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여러 차례에 걸쳐 박정희를 언급하면서 눈길을 끌었다. 김정일 위원장은 KBS 박권상 사장에게 KBS가 제작한 ‘영상 실록’ 가운데 박정희 편을 구해달라고 부탁했으며 박정희에 대해 “박 대통령의 평가는 후세가 할 일이지만 그 시대, 그 환경에서는 유신인지 뭔지 그런 길밖에 없었다. 민주화도 무정부적인 민주화는 좋지 않다”며 박 전 대통령을 높게 평가했고 [[2002년]]에는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을 평양에 초청하여 영화 ‘[[실미도]]’의 소재가 된 청와대 습격사건에 대해 사죄하며 “한국을 방문하면 박 대통령 묘소를 찾아가겠습니다. 그것이 예의입니다”라고 말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0&aid=0000226290 김정일“노태우 김영삼은 나라망친 대통령”]</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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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즈라 보겔(Ezra Vogel) 교수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정희에 대해 각각 "중화학공업 정책 이후 그가 폭력을 사용하고 나라를 경찰국가로 만들었을 때 우리는 매우 화가 났고 흥분했었다. 하지만 동시에, 박정희가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한국도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주장하며 동시에 "큰 발전을 이룩한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 그 변화를 가능케 했던 독재적인 리더가 있었다. 1920년대 일본의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이 그랬고, 대만과 한국이 그랬다. 중국은 덩샤오핑 치하에서 발전을 이뤘다. 모두 독재적이었고, 중앙집권적이었다. 먼저 민주화부터 하라는 미국인들의 충고는 성공하지 못했다."며 개발독재의 불가피성을 지적했다.<ref>[http://www.chosun.com/politics/news/200611/200611110045.html 에즈라 보겔 "통일돼도 일본과 1대1 대결 어려워"]</ref>
 
기미야 다다시는 박정희를 복잡한 과정이 들어있는 민족주의 사상을 가진 인물로 정리했다. 그는 박정희가 사회주의자인 일부 인물을 경제적으로 미국에서 자립하고 공업화하는 데에 등용했다고 기록했다.<ref>박정희 정부의 선택, 기미야 다다시, 후마니타스</ref> [[후진타오2006년]], [[중국후진타오]] 주석은 [[2006년중국]], 주석은 당시 중국을 방문한 박근혜 전 대표와 면담하며“박 대표의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이 주창한 새마을운동을 깊이 공부했다”고 발언하였다. <ref>http://news2.cnbnews.com/category/read.html?bcode=24474&load_bal=yes</ref>
 
MD 사의 중역으로 일한 데이빗 심프슨은 월남전쟁 당시 청와대를 방문하여 M16 소총의 수입에 대한 결정의 보답으로 박정희에게 100만 달러의 리베이트를 제안했지만 박정희가 이를 거부하고 그 대신 100만 달러의 리베이트를 다시금 M16 소총으로 바꾸어 육군에 지원을 요청했던 일화를 소개하며 “나는 그의 얼굴에서 한 나라의 대통령이 아닌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고 회고했다.<ref>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6626&yy=2009</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