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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괄은 [[길마재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밀리기 시작했다. 이괄은 [[음력 2월 11일]]에 [[장만]]과 [[임경업]]이 지키는 길마재를, 군대를 둘로 나누어 포위 공격했으나 패배하고 [[수구문]]을 나와 [[광주시|광주]]로 향하다가 [[장만]], [[정충신]], [[남이흥]] 등이 이끄는 관군의 추격으로 완전히 흩어졌고 이 과정에서 이괄의 군사에 의해 [[정철|송강 정철]]의 사위이자 [[광주]] 목사인 [[임회]]가 살해당했다.
 
도망가던 이괄은 [[음력 2월 15일]] [[이천]]에서 [[한명련]]과 함께 부하 [[기익헌]]과 [[이수백]]에게 살해되면서 반란은 마무리되었고, 반란군에 투항했던 [[이흥립]]은 자결했으며 이괄이 왕으로 세운 흥안군도[[흥안군]]도 처형되었다. 하지만 한명련의 아들 [[한윤]]이 [[후금]]으로 도망가 [[정묘호란]]의 명분이 되기도 했다.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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