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스터 주교후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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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7년]] 선출된, [[리페]]의 백작이기도 한 [[뮌스터의 오토 2세|오토 2세]] 주교 재위기부터 도시의 자치권 투쟁이 격렬해졌다. 오랜 투쟁 끝에 [[1457년]], [[교황]]에 의하여 지명된 [[뮌스터의 요한 2세|요한 2세]] 주교가 도시의 자치 헌장에 서명함으로써 [[뮌스터|뮌스터 시]]는 자치권을 획득했다.
 
[[1524년]] 이래로 특히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루터교|루터 파]]의 세력이 빠르게 강해지기 시작했다. [[1532년]] 선출된 [[뮌스터의 프란츠|프란츠]] 주교는 급기야 루터파 제후들의 동맹체인 [[슈말칼덴 동맹]]에 가담했다. 그 뒤를 이어 [[1553년]] 선출된 [[뮌스터의 빌헬름|빌헬름]] 주교는 자신을 [[카톨릭]] 주교라기보다는 루터파로 생각하였으며, 스스로를 [[뮌스터]]의 고색창연한 [[로마네스크 건축|로마네스크 양식]] 양식의 성당 관리인 정도로 여기면서 로마에 대한 충성을 거부하고 [[1557년]] 사임했다.
 
[[1574년]] 선출된 [[클레베 공국|클레베]]의 공작이기도 한 [[뮌스터의 요한 빌헬름|요한 빌헬름]] 주교는 결혼까지 했으며, 관구의 관리를 포기하다시피 했다. [[종교 개혁]]에 대한 [[카톨릭]]측의 반격이 시작되면서, [[신성 로마 제국]]의 중요한 주교령 중에 하나인 뮌스터 주교령의 주교위를 둘러싼 투쟁이 격렬해졌다. [[1585년]], [[쾰른 대주교령]]의 대주교이자, [[리에주 주교령]]의 주교이기도 한 [[뮌스터의 에른스트|바이에른의 에른스트]]가 주교로 선출되면서 이 싸움은 [[카톨릭]]의 승리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