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와라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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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오늘날의 오다와라 주변 지역은 선사 시대 이래로 사람이 살았고 고고학적인 증거는 [[조몬 시대]]에 이 지역이 인구 밀도가 높았음을 보여준다. [[나라 시대]]의 [[리쓰료]](율령) 체제 하에 이 지역은 [[사가미 국]] 아시가라시모 군의 일부가 되었다. [[헤이안 시대]]에는 [[쇼엔]](장원)으로 나뉘었고 대부분은 하타노 씨의 지배를 받았다. [[헤이케 씨]]와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사이에 벌어진 [[겐페이 전쟁]]의 [[이시바시야마 전투]]가 현재의 오다와라 부근에서 벌어졌다. [[센고쿠 시대]]에 오다와라는 성촌이자 [[간토 지방]]의 대부분을 지배한 [[후 호조고호조 씨]] 영토의 수도로써 발전하였다. 호조 씨는 [[오다와라 성]]의 난공불락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1590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패하였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영토가 되었다.
 
[[도쿠가와 막부]] 하에 오다와라는 [[다이묘]]가 대대로 통치하는 [[오다와라 번]]에 속해있었다. 성촌은 [[에도]]와 [[도쿄]]를 연결하는 [[도카이도]]의 [[슈쿠바]](역참)인 [[오다와라주쿠]]로써 번영하였다. [[메이지 유신]] 후에 오다와라 번은 오다와라 현이 되었고 아시가라 현과 합쳐졌다가 1876년에 가나가와 현에 편입되었다. 이 시기에 가나가와 현의 경제와 정치의 중심은 [[요코하마]]로 이동하였고 오다와라는 인구의 감소와 [[도카이도 본선]]이 도시를 우회하여 더 북쪽의 [[고템바 시]]를 경유하는 노선으로 건설됨에 따라 크게 고통받았다. 1923년의 [[간토 대지진]]의 진앙지는 [[사가미 만]] [[이즈오 섬]]의 밑이었다. 도쿄와 요코하마의 항구 도시, [[지바 현]], 가나가와 현, [[시즈오카 현]] 주변이 파괴되었고 간토 지방 전체가 광범위하게 피해를 입었다. 오다와라 건물의 90%가 즉각 붕괴되었고 화재로 남은 건물마저 전소되었다. 오다와라는 [[단나 터널]]의 개통으로 다시 번영하게 되었고 도카이도 본선의 주요 노선이 도시를 통과하게 되었다. 오다와라는 1940년 12월 20일에 정에서 시로 승격되었다. 1945년 8월 15일에 오다와라는 [[2차 대전]]으로 연합군 항공기의 폭격을 받은 일본의 마지막 도시였다. 2000년 11월 1일에 오다와라는 인구가 20만 명을 넘어서 [[정령 지정 도시]]가 되었다.
 
== 교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