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스기 쓰나노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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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분]] 3년(1663년) 10월 28일, 기라 요시히사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요네자와 번의 2대 번주 [[우에스기 사다카쓰]]의 넷째 딸인 [[바이레이인|우에스기 도미코]]이다. 간분 4년([[1664년]]) 윤5월 10일, 요네자와 번의 3대 번주 [[우에스기 쓰나카쓰]]가 후사 없이 급사하자, 우에스기 가문과 요네자와 번은 소멸될 위기에 처했으나, [[호시나 마사유키]]의 계책으로, 기라 요시히사와 도미코 사이의 갓태어난 아이 산노스케를 후계자로 하여 가문의 존속을 허락받았다. 산노스케는 '우에스기 기헤이지 가게노리({{lang|ja|上杉喜平次景倫}})'라 이름을 바꾸었다. 6월 5일, 정식으로 우에스기 가문의 당주가 되었는데, 당시 2세였던 그를 [[다케마타 요시히데]]와 [[나카조 도모스케]]({{lang|ja|中条知資}}) 등이 보좌하였다. 그러나 말기양자에 의한 상속의 대가로 영지 30만 석 중 절반인 15만 석이 삭감되어, [[시노부 군]], [[다테 군]]을 몰수당하면서 우에스기 번 영지는 [[오키타마 군]]만이 남았다. 이후 우에스기 가문은 심각한 재정 핍박에 시달리게 된다.
 
7월 11일, 연소한 기헤이지를 대신하여 가신들이 사례하기 위하여 4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쓰나]]에게 나아가 선물을 헌상했다. 그리고 간분 8년([[1668년]]) 8월 25일, 기헤이지 자신이 비로소 쇼군을 알현하였고, [[엔포]] 3년([[1675년]]) 11월 23일에는 쇼군 이에쓰나의 어전에서 원복식을 거행하고, 이에쓰나({{lang|ja|家綱}})의 편휘를 받아 쓰나노리({{lang|ja|綱憲}})로 개명하고, 종4위하, 시종, 단조다이히쓰({{lang|ja|弾正大弼}})에 서임되었다. 엔포 6년([[1678년]]), [[고산케]]의 하나인 [[기이 번]]주 [[도쿠가와 미쓰사다]]의 딸 하루히메({{lang|ja|栄姫}})와 결혼하였다. 엔포 7년([[1679년]]) 4월 21일, 처음으로 봉지 요네자와에 가는 것을 허락받았다. [[덴나]] 원년([[1681년]]) 4월 19일, 신임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로부터 유키미쓰의 칼({{lang|ja|行光の刀}})을 하사받았다. [[겐로쿠]] 2년([[1689년]]) 11월, 원래 본가인 기라 가문에 후계자가 없어지자, 둘째 아들 하루치요({{lang|ja|春千代}}, 훗날의 [[기라 요시치카]])를 친아버지 요시히사에게 양자로 보냈다. 이러한 이중 삼중의 친척 관계로 인해 기라 가문과 우에스기 가문은 더욱 친밀한 관계가 되었고, 기라 가문에서 소비하는 돈을 우에스기 가문에서 원조하거나 보태는 등의 일도 잦아졌다.
 
==번의 통치==
번의 통치에 있어서는 교학 진흥, 풍속 통제, 역직 정비, 역사 편찬 등 문치 정치에 힘썼다. 풍기 단속은 엄벌로 대처했고, 쓰나노리의 치세 중 집안의 부정으로 후다이({{lang|ja|譜代}}) 가신들이 추방당하는 경우가 많았고, [[덴나]] 3년([[1683년]])에는 영내에 도박한 자를 사형에 처한다는 법령을 공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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