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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년([[광해군]] 5년) 정의대부(正義大夫)가 되면서 구천군(龜川君)에 봉해지고, 1614년 중의대부(中義大夫)에 올라 이듬해 사옹원제조(司饔院提調)를 겸하였다. 1617년 [[이이첨]](李爾瞻)을 배척하고 [[윤선도]](尹善道)를 옹호하는 상소를 하였다가 순천으로 유배되었다가 1621년 풀려났다.
 
1623년 숭헌대부(崇憲大夫)에 올라 다시 사옹원제조와 종친부(宗親府)를 겸하여 관장하였다. 1624년([[조선 인조|인조]] 2년)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인조를 공주까지 호종하여 가덕대부(嘉德大夫)에 올랐으며, [[정묘호란]]때에는 임금을 [[강화도]]로 호종하였다. 그 뒤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도총관 자리에 올랐으나 [[병자호란]] 때 전사하였다올랐다.

사후 현록대부(顯祿大夫)에 추증되었다.
 
묘지가 현재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궁내동에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