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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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들의 엽관(獵官) 운동의 자금을 대주어 일이 잘되면 특정한 화물을 독점적으로 취급하는 특권을 얻는 수도 있었다. 봉건적인 경제 체제이긴 하였으나 그 업무를 통하여 자본을 축적할 수 있어서, 개항(開港)과 동시에 초기 외국 무역의 담당자가 되어 새로운 자본 계급을 형성하게 되었다.
 
[[1876년]](고종 13) 강화도 조약 체결 후 외국 상품이 개항지(開港地)를 조직하여 길드(Guild)적인 동업 조합(同業組合)의 기능을 발휘하였으며, 이들은 개항지에서 외국인과 절충하여 외국 상품 판매의 중개 역할도 하여 꽤나 수익을 많이 보곤 하였다. 그러나 1880년대에 조청상민수륙장정을 통해 객주는 몰락하는 계기가 되었기도 했다. [[1890년]](고종 27) 인천·부산항에 객주 25개소를 설치하여 화물(貨物)을 취급하는 도매업과 운송업·창고업 등을등 운영하는 상회사를 설립하여 맡아보면서 구전(口錢)을 받도록 하였다. [[1930년]]에 철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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