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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론'''(豫定論)이란 구원과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개신교]]의 신학 이론을 지칭하는 말이며, 종종 좁은 의미로 [[개혁주의 (신학)|개혁주의]] 즉, [[장로교회]]와 [[개혁교회]]의 이중예정론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정론에서는 [[구원]]은 인간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스스로 구원할 능력이 없는 인간을 선택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설명함으로써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와 주권을 강조한다.
 
== 개혁주의 이중예정론 ==
[[개혁주의]] 예정론은 인간의 [[칼뱅주의 5대 강령|전적 부패]]와 구원에 관한 [[다섯 Sola|전적 은혜]]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간략히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 사람에게는 자유로운 선택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범죄로 타락한 까닭에 회개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전적 타락; [[루터]]는 이를 보고 '인간의 의지는 죄의[[죄]]의 노예'라고 하였다.)
# 이러한 인간의 거부와 불순종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양심이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 밖에 없다. (오직 은혜)
이러한 배경 속에서 개혁주의 예정론은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하시기 이전, 곧 시간조차 창조되지 않은 하나님의 영역에서, 창조 후 인간의 멸망을 아시사 그 가운데서 일부를 아무 [[칼뱅주의 5대 강령|조건 없이]] 선택하사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이다. 이는 누구를 방치하실 것인가에 정하셨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중예정론'''이라고 불린다.
===운명론과의 차이===
 
이중예정론과 운명론의 차이는 운명론의 경우 과거의 어떤 시점에서 미래의 일을 결정지었다는 이론이지만, 이중예정론은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의 축을 초월한 신의 영역에서의 결정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이렇게 시간을 초월하여 결정된 사실은 시간에 갇혀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시공간이 창조되기 전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게 된다.
===신학적인 체계화===
 
이러한 이중예정론은 일찍이 [[어거스틴]]이 주장하여 '어거스틴주의'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자세한 것은 [[어거스틴-펠라기우스 논쟁]] 참조.) 그러나 신학적으로 체계화 된 것은 [[종교개혁]] 때 개혁자들에 의해서였다. 특히 [[마르틴 루터]]의 《노예의지론(Bondage of the Will)》은 이에 대한 변증서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중예정론은 [[개혁주의 (신학)|개혁주의]] 신학의 한 특징이 되었다. 특히 개혁주의에서 얘기하는 [[칼뱅주의 5대 강령]]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자세한 것은 [[개혁주의 (신학)|개혁주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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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독설''' ('''monergism'''): 하나님이 구원의 길을 마련하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그것을 취하는 것도 그리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해주셔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구원은 하나님께만 달려있다는 것이다.
 
[[에라스무스]]는 개혁주의의[[개혁주의]]의 단독설에 대해 "그렇다면 누가 노력하며 자기 삶을 개선하려 할 것인가?" 하고 물었다.<ref name="bondage">마틴 루터, "노예의지론", p.99</ref> 이에 대해 [[루터]]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아무도 없다! 아무도 할 수 없다! 하나님은 당신과 같이 자기개선을 하려는 사람을 대하실 시간이 없는 것은 그들이 위선자이기 때문이다. 선택 받은 자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그들이, 성령에 의해 개선될 것이다. 나머지는 개선되지 못하고 멸망할 것이다".<ref name="bondage"/> [[에라스무스]]는 또 "누가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신다고 믿겠는가?"하고 물었다.<ref name="bondage"/> 이에 대해 [[루터]]는 "아무도 없다! 아무도 할 수 없다! 오직 택함 받은 자들 만이 믿을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믿지 못하고 멸망할 것이다; 당신의 표현처럼, 화를 내며 신성모독하면서."<ref name="bondage"/>
 
합력설을 주장하는 신학사상을 넓게는 [[알미니안주의]]라고 하며, 단독설을 주장하는 신학사상은 넓게 [[어거스틴주의]]라고 한다. 예정론은 물론 어거스틴주의에 해당한다. 오늘날 [[어거스틴주의]]를 주장하는 교파는 [[장로교|장로교회]]와 [[개혁교회]]가 있으며, 이 외의 종파들은 대개 [[알미니안주의]]를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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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지예정론 ==
예지 예정론의 요점은 "성경에성서에 등장하는 '예정'의 뜻은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는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그리스도]]를 믿을 것인가를 미리 아셨기 때문에, 바로 그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로[[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예지 예정론의 선택은 조건적이라는 점에서 [[마르틴 루터|루터]]나 [[장 칼뱅|칼빈칼뱅]] 등 종교개혁자들에[[종교개혁자]]들에 의해 주장된 본래의 예정론과 차이가 있다 --- 즉,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것인가 안 믿을 것인가를 미리 보고 선택했다면 그것은 조건부 선택이다. 그러므로 예지 예정론은 알미니안주의 안에 들어 간다. 그러나 본래의 예정론은 하나님께서 아무런 조건 없이 선택하셨다고 주장한다. 예지 예정론을 주장한 유명한 사람으로는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가 있다.
 
== 역사 ==
처음 합력설과 단독설의 논쟁 교회에서 불거진 사건이 4~5세기에 있었던 [[어거스틴-펠라기우스 논쟁]]이다. 어거스틴은 단독설을 주장하였고 펠라기우스는 합력설을 주장하였는데, [[카르타고 회의]]에서 기독교회는 어거스틴의 이론을 채택하였고, 이리하여 단독설에 어거스틴주의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그러나 곧 [[로마교회]]는 알미니안주의로 회귀하게 되는데, 다시 어거스틴주의가 등장하게 된 것이 종교개혁자들을 통해서였다. 종교개혁 당시 이러한 어거스틴주의식 원죄론에 반대하고 '사람은 하나님이 심성을 따로 바꾸어 주시지 않아도 스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 사람 중 대표적인 사람이 [[에라스무스]]다. 여기에 반박하고 '전적 타락'설을 주장한 것이 [[마르틴 루터|루터]]의 《노예의지론(Bondage of the Will)》이다. [[에라스무스]]의 주장은 합력설에 해당하며, [[마르틴 루터|루터]]의 주장은 단독설에 해당된다. 합력설과 단독설의 논쟁은 기독교 초창기에 이미 있었고, 잘 알려진 것이 4~5세기에였[[5세기]]에였 있었던 [[영국]]의 [[신학자]]인 [[펠라기우스]]와 교부 [[어거스틴]] [[주교]]와 논쟁이다. [[펠라기우스]]는 합력설을 주장하
 
종교개혁 이후로는 17세기에 [[알미니우스]]를 따르는 [[알미니안주의]]자들이 합력설을 주장하였다. 이 때 [[알미니안주의]]자들의 주장에 반박하면서 [[도르트 총회]]에서 작성된 것이 '[[개혁주의 (신학)|칼빈주의의 5대 강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