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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 지하철]]의 건설은 [[1985년]] [[서울 지하철 3호선|3호선]]과, [[서울 지하철 4호선|4호선]]의 완공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서울특별시|서울]]의 확장은 주택 2백만가구 건설계획에 따라 지속되었고, 부족한 지하철 네트워크로 인해 [[1기 지하철]]만으로는 서울 전체 통행량가운데 16~20% 가량만을 처리하고 있었다. 게다가 주택 2백만가구 건설계획에 의해 건설된 목동, 고덕, 노원, 수서지구 등지에 거대한 택지가 조성되어 새롭게 백만 명 이상의 인구가 배치되었지만 1987~1991년 사이에 진행된 6차 경제개발 시기에 도시철도에 투하되었던 정부의 예산은 불과 768억원에 불과했다<ref>한국교통개발연구원(KOTI), 《한국의 교통정책》, 2003: 96쪽</ref>. 이는 이미 2조원이 넘는 막대한 부채 위에서 운영되고 있었던 [[1기 지하철]]로 인한 재정압박이 재현될 것을 두려워한 정부가 신규 지하철 노선에 대한 자본투자를 꺼리고 있었다는 점을 정확히 드러내 준다.
 
하지만 막대한 양의 인구가 새로운 거대 택지에 배치되고 교통 상황은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상황 앞에서 시 정부가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을 수는 없었다. 1988년 1월 3,4호선 이후 최초의 지하철 계획이 서울시에 의해 발표된다. 이는 근본적으로 지선과 연장선을 놓겠다는 계획으로 이뤄져 있었다. 5호선, 6호선, 7호선의 신설 및 [[서울 지하철 3호선|3호선]]·[[서울 지하철 4호선|4호선]]을 각각 [[성남시]]와 [[군포시]] 소재의 [[금정역]]까지 연장하는 계획이 그 골자였다. 사업을 1, 2단계로 나누어 진행하겠다는 논의는 여기서부터 출발한 것 같다. 1단계 사업에서 5호선 [[영등포]]~[[화곡동]]~[[김포공항]] 및 6호선 [[왕십리]]~[[군자동]]~[[천호동]]을 [[1990년]]부터 건설해 [[1994년]]에 완공하고, 7호선은 [[잠실]]~[[둔촌동]]~[[고덕동]]을 잇는 노선으로 하여 앞선 두 개의 연장선과 함께 [[1999년]]에 완공한다는 계획이었다. 이 해 8월에는 새롭게 지방세로 전환되는 담배소비세를 이용하여 지하철 건설에 투하할 자본을 마련, [[1989년]]부터 공사를 시작할 것으로 시는 발표를 수정했다.
 
다음해 1월 정부는 수도권의 팽창과 그에 따라 발생할 교통량에 대응하기 위해서 수도권 교통관리청을 신설해 지하철공사를 그 산하에 두고 교통관리업무를 맡긴다는 골자의 발표를 하며 여기서 함께 노선망의 확충 계획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서울시의 계획에서 8호선 [[상계]]~[[망우]]~[[강남]]~[[노량진]]~[[여의도]], 9호선 [[시청]]~[[여의도]]~[[영등포]]~[[부천시]], 10호선 [[노량진]]~[[구로공단]]~[[시흥]], 11호선 [[중앙선]] 개량, 12호선 [[경춘선]] 개량, 13호선 [[경의선]] 개량이 추가되었고 이 때 서울~구로간 3복선화 및 [[경인선]] 2복선화 계획이 언급되었다. 이 계획들은 재정계획 및 전문적 연구가 결여되었고 주체간의 협의도 정확히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노선망의 확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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