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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rder="0" solid #B0E0E6 cellpadding="2" cellspacing="1" style="float:right; margin-left:1em; background:#E6E6FA;"
! colspan="2" | <font color="#191970">안타크야안타키아</font>
|---- bgcolor="#ffffff"
| colspan="2" align="center" |[[그림:Antakya225.jpg|250px]]<br />안타크야를안타키아를 흐르는 [[오론테스 강]]
|-
! colspan="2" | <font color="#191970">터키에서의 위치</font>
|}
 
'''안타크야안타키아'''({{llang|tr|Antakya}}, {{llang|ar|انطاكية}}, {{llang|el|Αντιόχεια}}, {{llang|la|Antiochia ad Orontem}})는 [[터키]] 남부 [[하타이 주]]의 중심지로 하타이 주의하타이주의 주도(州都)이다. 역사 속에서는 '''안티오크'''({{llang|en|Antioch}}), '''안디옥안티옥''', '''안티오키아'''({{llang|la|Antiochia}}), '''안티오케이아'''({{llang|el|Αντιόχεια}})라고도 불렸다불린다.
 
[[기원전 4세기]]경 [[그리스]]계의 [[셀레우코스 왕조]]에 의해 [[안티오케이아안티오키아]]가 건설되어 [[알렉산드레이아알렉산드리아]]와 함께 [[지중해]] 동부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였다. 초기 [[기독교]]의 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중요한 5개의 [[총대주교|총대주교좌]]가 있는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 지리 ==
안타크야는안타키아는 [[터키]] 남부 [[오론테스 강]] 동안에 위치한 도시로 터키와 [[시리아]]의 국경 근처에 있다. [[지중해]] 연안으로부터 약 22km 정도 내륙으로 들어가 있으며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은 덥고 건조하다. 농업이 중요한 산물로 근처의 비옥한 아미크 평원에서 집약적인 농업이 이루어지고 있어 가까운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 관련 산업이 현재 안타크야의안타키아의 경제적 기반을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밀, 목화, 포도, 올리브 등이다.
 
== 역사 ==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고 그의 뒤를 이은 후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셀레우코스 1세]]는 [[셀레우스코스 왕조|셀레우코스 제국왕국]]을 세웠고 안티오케이아를안티오키아(안타키아)를 그 왕국의 중심도시로 정했다. 그 후로 이 도시는 계속 셀레우코스 제국의왕국의 중심지로서 번영을 누렸으며 [[지중해]] 동부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로 성장하였고 [[로마]], [[알렉산드레이아알렉산드리아]]에 이어 당시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였다.
 
[[기원전 64년]] [[로마 공화정|로마]]에 편입되었고 [[시리아]] 속주의 주도가수도가 되었으며,되었고 [[로마 제국|제정 시대제정시대]]에도 계속 발전하였다. 특히 초기 [[기독교]] 때 선교와 신학 교육의 중심지로 크게 이름을 날렸는데 [[파울로스바울로|사도 바울로]]는 이곳을 중심으로 기독교 전파에 힘썼다. 그 후 [[동로마 제국]] 시대에도 중요한 도시로 발전했으며 기독교의 중요한 [[총대주교|5개 총대주교구]]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안티오케이아의안티오키아의 기독교 학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는 알렉산드레이아의알렉산드리아의 기독교 학파와는 달리 인성(人性)을 중요시 여겼다. [[동방정교회|동방 교회]]의 [[교부]]인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모스크리소스토무스]]도 이 도시 출신의 신학자이다.
 
그러나 [[비잔티움동로마 제국]]의제국의 국력이 약해지자 안티오케이아는안티오키아는 두 번에 걸쳐 [[페르시아 제국]]에게 넘어갔다가 [[637년]] 이후 아랍계 [[이슬람]]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이슬람의 지배를 받은 이후부터는 예전의 번영을 잃고 작은 중소도시로 전락했다. [[969년]] 비잔티움동로마 제국제국의 황제 [[니케포로스니케포루스 2세]] 이 도시를의해 다시 탈환하여제국령으로 편입되었고 제국의 변경 요새로요새 역할을 삼았다했다.
 
[[1084년]]에는 당시 [[소아시아]]를 휩쓴 [[셀주크 투르크]]에 점령되었다가 [[1098년]] [[제1차 십자군|제1차 십자군 원정]] 당시 [[십자군]]이 이 도시를 점령하여 [[안티오키아 공국]]을 세웠다. 안티오키아 공국은 두 세기에 걸쳐 라틴계 [[로마 가톨릭]] 독립국가로 존재했으나 [[1268년]] [[시리아]] 및 [[이집트]]를 손에 넣은 [[맘루크 왕조]]의 침입으로 무너졌고 안티오크는 다시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1517년]] [[오스만 제국]]이 안티오키아를 차지한 후 [[제1차 세계대전]]까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오늘날에는 터키의 도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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