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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나시모토노미야 이쓰코'''(梨本宮伊都子, 1882년(메이지 15년) 2월 2일1976년(쇼와 52년) 8월 19일)는 일본의 옛 황족으로, ...)
 
[[1882년]] 옛 사가 번주이자 후작인 나베시마 나오히로(鍋島直大)의 차녀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나오히로의 계처인 히로하시 나가코(広橋榮子)이다. 당시 [[이탈리아]] 주재 특명 전권대사였던 부친을 따라 일가가 이탈리아에서 거주하던 중 [[로마]]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의 수도에서 태어난 아이라는 뜻의 ‘이쓰코(伊都子)’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1900년]] [[11월 25일]]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와 결혼하여 황족이 되었다.
 
황족 여성들 중에서도 빼어난 미모로 알려졌으며, 프랑스어를 비롯한 외국어에 뛰어났다. [[1909년]]에는 유럽 여행을 한 뒤 귀국 길에 대한제국을[[대한제국]]을 방문, [[순종 황제를황제]]를 알현한 뒤 창덕궁의[[창덕궁]]의 비원을[[비원]]을 구경하기도 하였다.<ref>오타베 유지,『낙선재의 마지막 여인』(동아일보사, 2009년) pp.41~2.</ref>
 
[[1947년]] [[신적강하]]로 황족의 지위를 박탈당하여 나시모토 이쓰코(梨本伊都子)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였다. 또한 글쓰기를 즐겨 오랜 세월 써 온 일기를 바탕으로 만년에는 자서전 『삼대 천황과 나(三代の天皇と私)』를 출판하였다. [[1957년]] [[11월 27일]] 당시 황태자인 [[아키히토]]가 평민인 [[미치코 황후|쇼다 미치코]]와 약혼하자 분개하여 "'''일본도 더 이상은 안 된다고 생각했다'''"라는 기록을 남긴 것으로 유명해졌다.
 
전후 아들이 없는 나시모토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차녀인 노리코의 삼남 요시미쓰(儀光)를 가문의 양자로 맞아들였으나 요시미쓰와의 관계가 악화되어 연을 끊었다.<ref>위의 책, p.212</ref>
 
== 자녀 ==
이쓰코는 모리마사와의 사이에서 두 딸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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