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라이비츠 방송국 공격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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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과 ==
[[파일:Sender gliwice.jpg|thumb|오늘날의 글라이비츠 방송국 라디오중계탑]]
동년 [[8월 10일]] 하이드리히는 나우요크스를 불러 폴란드와 국경인 실레지안 고원의 글라이비츠에 있는 독일 방송국을 공격하라는 지시를 한다. 이 공격은 폴란드군이 아무런 이유없이 방송국을 공격했다는 증거를 남기는 것이
[[8월 15일]], 나우요크스는 SD 요원 6명을 선발하여 글라이비츠로 향했다. 1937년 이후 독일의 국경경찰은 [[게슈타포]]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비밀 보장도 용이했다. 그곳에서 나우요크스는 15일을 대기하게 된다.
8월말, 나우요크스는 글라이비츠 북쪽 70Km 지점의 소도시 오베른으로 소환되었다. 그곳에서 게슈타포 장관 뮐러가 건네주는 "'''재료'''"를 인수했다. 이 재료는 공격 후 독일군의 반격을 받아 사망한 폴란드군 역할을 담당할 죄수들이었다. 하이드리히는 이들에게 "'''깡통'''"이란 암호명을
[[8월 31일]] 정오, 나우요크스는 하이드리히로부터 저녁 8시에 작전을 개시하라는 암호 명령을 받았다. 암호명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였다. 대기하던 나우요크스와 부하들은 폴란드군 군복을 입은 채 글라이비츠 방송국으로 쳐들어갔고, 건물 안에 있던 전신기사 한 명과 직원 두 명 그리고 경비원 한 명을 포박했다. 8시 12분, 나우요크스의 부하들은 방송을 중단시키고, 예정대로 선언문을 낭독했다. 내용은 간단했지만, 폴란드가 독일에 전쟁을 선포한다는 내용이었다. 총 소요 시간은 4분이었다.
나우요크스는 전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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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2|나는 명령을 실행하고 방송국 근처로 수인들을 운반했다. 그 수인들은 살아 있었으나 완전히 의식을 잃고 있었다.}}
이 죄수들은 미리 폴란드군의 군복을 입은 채 독약 주사를 맞은 상태였다. 나우요크스는 이들에게 총격을
== 작전 그 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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