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문학):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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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
{{본문|정철}}
鄭澈 (1536-1593) 조선 선조 때의 문신·시인.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으로 벼슬이 좌의정에 이르렀다. 서인파의 투사로서 당쟁의 와중 속에서 몇 차례 파란과 귀양살이를 겪었다. 그는 또한 시인으로서 천재적 자질을 나타내어 많은 걸작 가사를 남겼다. 그의 가사는 종래의 한문투를 벗어나 3·4조의 운율에 의해 자유자재로 우리말을 구사했으며, 그의 호탕하고도 원숙한 시풍은 가사문학의 최고봉이라 일컬어진다. 작품에 명종 15년 김성원을 위해 지은 <성산별곡>, 선조 13년 강원도 관찰사로 갔을 때 지은 <관동별곡>, 선조 18년-21년 전라도 창평에 은거했을 때 지은 <사미인곡>·<속미인곡> 등 4편이 있고, 사설시조 <장진주사> 1편과 단가 77수가 <송강가사>에 실려 전함. 그는 가사문학의 대가로 시조의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와 더불어 한국 시가사상 쌍벽으로 일컬어진다. 문집으로서 <송강집> <송강별집추록유사(松江別集追錄遺詞)>가 전한다. 특히 <장진주사>는 탐미주의적인 향략 사상이 잘 나타나 있는데, 이것은 술에 대한 찬가라기보다 도가적(道家的)인 체험을 읊은 것으로 조선 유학자로서의 일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의 가사 작품 5편에 나타난 시사(詩思)·구상·정서에 있어 실로 조선 문학의 압권(壓卷)이라 할 만하다.
 
====송강가사(松江歌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