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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파일:Cheng Hao.jpg|thumb|left|정호]]
부친 향(珦)은 지방관이었을 당시 [[주돈이]]를 알아 명도, 이천 형제를 그에게 배우게 하였다고 한다. 진사에 급제한 후 지방관으로 활약하였다. [[1070년]] 경에 여공저(呂公著)의 추천으로 중앙정부에 들어 갔다. [[왕안석]]의 신법(新法)이 거론되자 의견을 달리하여 직을 떠나 지방관으로 지냈다. 그 성격은 온후관대하여 동생 이천이 이론적이며 준엄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명도 사상(明道思想)의 특색은 인설(仁說)·성론(性論)인데 그 기초가 되는 것은 역적 논리(易的論理)의 전개로서의 형이상적 사유이다. 그에 의하며 현상의 세계는 결국 음양 2기(陰陽二氣)의 대대(對待)에 의해 생성소멸하는 것으로 그것은 ‘자연적으로 그런 것’이다. 그것은 바로 [[역경|역]](易)에 “1음 1양(一陰一陽), 이를 도(道)라고 한다”고 하는 도(道)이며, 천지만물의 이(理)나 도(道)는 사람에 있어 묵식심통(默識心通-사람의 마음에 개우쳐지는 것)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의 인설(仁說)은 이 논리를 기저로 하여 천지자연의 이(理)와 사람의 이(理-일반적인 性)와의 일체관에서 논술된다. 〈식인편(識仁篇)〉에서 “인(仁)은 혼연히 물(物)과 동체요 의례지신(義禮智信) 모두 인(仁)이다. 이 이(理)를 알아서 성경(誠敬)으로써 이것을 보존(存)할 뿐이다”라고 말하였다. 인(仁)은 ‘저절로 그러한’ 천지만물의 이(理)·도(道)인 동시에 사람의 마음의 이(理)라는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인(仁)을 체득하면 이미 나는 천지만물과 일체요 일신인 것이다. 이와 같은 사고방식이 발전하여 성(性)은 곧 기(氣)요, 기(氣)는 곧 성(性)으로서 생겨나면서 지닌 그대로 성(性)이라고 하는 논리가 전개된다. 그의 〈진치법 10사(陳治法 十事)〉는 반신법당(反新法黨)의 처지에서 당시의 정치사회 상태를 잘 통찰하여 그 폐단을 찌른 예리한 정치 논문이다. 정호의 사상은 [[남송]]의 [[육상산]]을 거쳐서 [[명나라|명]]의 [[왕수인|왕양명]]의 사상으로 계승·전개된다. 어록·저술은 《2정전서(二程全書)》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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