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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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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24일 (일) 16:54 판

구멍 공 孔

공(孔)씨는 중국에서 계출된 성씨로 은나라 왕자 미자의 후손인 공자(孔子)에게 연원을 두는 성씨이다. 한국 공씨의 시조는 중국 원나라고려에 동래하여 정착한 공자의 54세손 공소(孔紹)로 전한다.

곡부 공씨의 시조는 중국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孔子)의 54세손 공소(孔紹)이다. 그는 고려 공민왕이 원나라 위왕(衛王)의 딸인 노국대장공주와 혼인하여 귀국할 때 배종하면서 한국에 들어와 정착하였다. 공소(孔紹)는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냈으며, 회원군(檜原君)에 봉해지고 창원을 봉지(封地)로 받아, 창원을 본관으로 하였다. 이후 정조 18년(1794년) 왕명으로 공자의 출생지인 곡부(曲阜)로 본관의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공평할 공 公

공(公)씨는 중국 노나라에서 계출된 성씨로, 노나라 왕족으로 공자의 제자였던 공화수(公夏守)에 연원을 두는 성씨이다. 한국 공씨의 시조는 공화수의 후손으로 전하는 공윤보(公尹輔)로, 당나라 현종 때 신라 경덕왕 14년에 한국에 동래하여 김포에 정착했다고 한다.

김포 공씨의 시조 공윤보(公尹輔)는 당나라 현종 때 안녹산의 난을 피하여 경덕왕 14년(755년)에 귀화하여 김포에 정착하였다. 그 후 고려와 조선 시대을 거쳐 김포를 관향으로 여러 파로 나누어 지게 되는데, 공명례(公明禮)는 성종 9년(1478년)에 왕에게 직간을 하다가 파직되어 평안도 벽동(碧潼)으로 귀향가면서 벽동파(碧潼派)로 나누어 졌고, 공보언(公普彦)는 세조 때 불복신(不服臣)으로 몰려 함경도 문천(文川)으로 유배되어 문천파(文川派)로 나뉘어 졌다. 그리고 정승 공의(公義)의 후손들이 함안에 살다가 창원에 이거하면서, 창원파(昌原派)로 나누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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